[주택 모기지시대 열린다]<중>'집값 30%' 자금마련이 관건

  • 입력 2003년 9월 23일 17시 59분


코멘트
모기지(주택저당채권) 유동화제도 정착에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가 주택저당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선뜻 넘겨줘야 한다. 둘째, 공사가 발행하는 유동화증권(MBS)을 높은 가격(낮은 금리)에 사주는 투자자가 많아야 한다. 셋째, 주택수요자들이 장기 고정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선호해야 한다.

지금 이런 조건이 충족되고 있을까?

▼관련기사▼

- 주택 모기지시대 열린다<상>

▽금융회사=시큰둥한 반응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돈이 없어 대출을 못 늘리는 게 아니라 돈 쓸 곳이 없어 걱정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권을 유동화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여전히 높은 저축률과 기업대출 비중의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이런 상황은 오래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이 망설이는 더 큰 이유는 공사에 채권을 넘기면 손해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공사에 채권을 파는 대가는 0.5%의 수수료다. 반면 정기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은행채 등으로 재원을 조달해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2%포인트의 예대금리차를 챙길 수 있다.

채권을 넘기면 대출자가 빚을 떼먹을 때의 손실 부담을 털어낼 수 있다. 하지만 대출한도가 담보자산가치의 60%에 그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손실 위험은 크지 않다.

▽주택수요자=지난해 국민은행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7%는 집을 주거수단보다는 재산증식 수단으로 여겼다. 내 집을 마련한 이들은 대개 3∼4년에 한번씩 집을 넓혀간다. 그 사이 집값이 뛴다. 그러니 만기 3년 이하의 단기대출이 선호되는 게 당연하다.

집 없는 사람들의 고민은 정반대다. 집값이 소득보다 더 빨리 올라 ‘집값의 30%’라는 발판에 올라서기가 힘들다. 연간 가구소득 대비 집값의 배율(PIR)은 2001년 4.6배에서 2002년 5.5배로 올랐다. 국토연구원 윤주현 주택토지연구실장은 “PIR가 3 이하가 되지 않으면 모기지제도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자자=공사가 금융회사에 장기 대출재원을 대주려면 MBS를 대출 만기에 맞춰 잘 팔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변변한 장기채권시장이 없다. 투자자에게 MBS 금리로 얼마를 줘야할지 참고할 기준이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MBS 매입 후 생기는 만일의 손실을 공사가 보전해 주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5.3%의 금리로 MBS가 잘 팔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공사는 투자자에게 섭섭지 않은 금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은행이 가급적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주택저당채권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야 하니 잠재적인 부실 요인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당장 급한 것은 시큰둥한 은행과 주택수요자들을 달래고 딴청을 피우고 있는 투자자들을 다독이는 일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공사의 신인도가 높기 때문에 적정금리로 MBS를 소화시킬 수 있으며 주택 실수요자들이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고 주거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은행들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