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동의없인 1명도 해고못해

  • 입력 2003년 8월 6일 0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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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40여일간 맞서 온 현대자동차 노사가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근로시간 단축)와 상당한 수준의 노조 경영 참여에 합의, 다른 사업장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없이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율해결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긴급조정은 피했다=정부는 4, 5일 협상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분규가 계속되면 6일부터 긴급조정권 발동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긴급조정권이란 합법적인 파업이라도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노동부 장관이 내리는 ‘최후의 조정수단’. 긴급조정 공표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파업을 멈추지 않으면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 것은 물론 분규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현대차 노사는 금속노조 100개 사업장에 이어 노사가 합의하지 않는 한 임금삭감 및 휴가 휴일수 조정 등 기존 근로조건을 바꾸지 않고 주당 근로시간을 42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인다는 데 합의했다.

당초 사측은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 5% 향상’을 전제로 내세웠으나 노조의 요구를 결국 수용해 노조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인 정부 입법안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근로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정부안은 법정 주당 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되 연월차 휴가를 줄이고 여성 근로자의 생리휴가를 무급화하며 임금보전에 대해서는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깎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포괄적 선언규정만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주5일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안을 따르려는 사용자와 현대차 및 금속사업장 노조처럼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를 쟁취하려는 노조간에 상당한 마찰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조 동의 없이는 근로자 해고 없다=현대차가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를 대폭 수용함에 따라 다른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해달라는 노조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특히 현대차가 노사공동위원회의 의결 또는 노조와의 공동결정을 거치지 않고는 사실상 단 한 명의 근로자도 해고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 것은 경영의 본질이 침해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이달 말쯤 노조의 경영참여 확대를 포함한 노사관계 제도 개선안의 틀을 발표할 예정인 정부도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경영참여 조항 중 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한 부분은 예상보다 ‘수위’가 높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틈만 나면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해고의 용이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대로라면 안정성만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민간기업 노사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국제기준에 맞도록 법과 제도를 고치기 전에 단체협약으로 경영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사업장이 늘어나는 것도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김장호(金章鎬)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은 “규모가 크고 탄탄한 현대차는 경기가 악화되더라도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겠지만 중소 사업장은 사정이 다르다”며 무조건 현대차의 선례를 따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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