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할 ‘정치자금 비밀’ 있었나

  • 입력 2003년 8월 5일 1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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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000년 4·13총선 당시 현대측이 비자금 수십억원을 정치권에 제공했는지를 집중 조사한 것은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피할 수 없는’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대 비자금 150억원+α’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6일과 31일, 자살하기 직전인 이달 2일까지 모두 3차례 정 회장을 소환 조사했다. 1일 정 회장이 대북 송금 사건 3차 공판에 출석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정 회장은 7월 31일부터 3일 연속으로 검찰과 법원을 오갔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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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출퇴근 형식으로 이뤄졌지만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졌다.

당시 검찰은 정 회장을 상대로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한 경위뿐 아니라 이른바 ‘+α’ 부분에 대해 조사를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50억원을 돈세탁한 것으로 지목된 김영완(金榮浣·미국 체류 중)씨의 귀국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관련 계좌추적에서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단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정 회장에 대한 조사는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고비’였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계좌 추적 과정에서 포착한 현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정황이라는 ‘+α’를 정 회장에게 들이대며 어떤 정치인에게 얼마를 건넸는지, 그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 회장에게 커다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남북경협 사업에 대한 신념으로 버텨 왔던 그였지만 검찰 수사가 예상 밖으로 계열사 전반에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 회장 조사에 앞서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과 김재수(金在洙) 현대그룹 경영기획팀 사장도 소환해 현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여부를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 관계자들도 정 회장이 최근의 검찰 조사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의 한 측근은 “회장님은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인데 검찰의 추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규 사장이 4일 문상을 온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회장님이 다 막으려고 돌아가셨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정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북 송금 특검에서 넘겨받은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단서를 포착하고 ‘원칙과 정도’에 따라 수사를 해왔는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은 수시로 변호인과 접견을 했으며 조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검찰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등 자살을 할 어떠한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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