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싱크탱크]<8>에너지경제연구원

입력 2003-07-29 18:17수정 2009-10-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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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계는 2개의 ‘GW’가 지배한다.”

류지철(柳志喆)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연구부장은 1991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환태평양 에너지협력을 위한 심포지엄(SPCE)’에서 이 같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2개의 GW는 걸프전(Gulf War)과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뜻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11명 위원들이 이상곤 원장(앞줄 왼쪽에서 4번째)을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오진규 선임연구위원, 김진우 연구조정실장, 김진오 경제분석연구부장, 이상곤 원장, 문영석 정책분석실장, 심상렬 동북아에너지연구실장. 뒷줄 왼쪽부터 임재규 연구위원, 나인강 연구위원, 유승직 연구위원, 박용덕 연구위원, 도현재 연구위원, 박창원 연구위원. 박주일기자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에너지. 91년 걸프전을 일으킨 미국의 속내에는 중동의 석유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기후변화협약은 공장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제한해 경제의 틀을 바꿔놓는 변수다. 공장을 가동하려면 돈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사들여야 한다.

류 부장의 진단은 91년 당시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는 올해 초 이라크전쟁을 통해 노골적으로 ‘에너지 이권’에 대한 의도를 드러냈다.

기후변화협약은 92년 리우환경회의와 97년 교토의정서를 거치며 에너지를 경제의 결정적인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상곤(李相곤) 원장은 “에너지는 이제 정치 군사 경제 생태 국제협력 등을 아우르는 변수”라고 말했다.

▽에너지로 본 한국경제사=에너지경제연구원은 에너지 수급, 가격 체계, 소비구조 개편, 국제 협력과 해외 동향 분석, 통계 등을 담당하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한다. 게다가 에너지소비형 경제여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경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셈이다.

김진오(金鎭五) 경제분석연구부장은 “한국의 에너지전략은 국가 주도의 확보와 배급에서 시장원리와 국제협력의 시대에 맞게 바뀌어왔다”고 말했다.

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은 후 에너지 정책은 안보 차원에서 다뤄졌다. 86년 설립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수입처 다변화, 에너지 절약, 에너지시설 확충 등 안정된 에너지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수급 조절과 가격 결정도 정부의 몫.

90년대 중반부터 에너지정책은 민영화 자유화 시장원리 등으로 바뀐다. 연구원은 95년부터 한국전력의 구조개혁을 주장하며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를 이끌었다.

97년 석유산업자유화도 연구원의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국내 정유사들은 “전략 분야를 대외 개방과 자율 경쟁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으나 석유산업자유화는 에너지정책에 시장원리를 도입한 첫걸음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가격고시 방식도 정유사들의 자율 가격과 서비스 조정 방식으로 전환됐다.

민영화와 시장원리 도입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

2001년 연구원은 항의전화 탓에 곤욕을 치렀다. 연구원이 ‘1차(2001∼2005년) 에너지구조개편 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휘발유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을 올려 기름 종류별 가격 차이를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LPG 경유 사용자들의 반발은 예정됐던 일.

문영석(文英錫) 정책분석실장은 “원가는 비슷한데 정책적 가격 조절이 시장의 왜곡과 경유 LPG의 과소비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에너지등급효율표시제, 지역난방 등 에너지 절약 정책도 연구원의 몫.

연구원은 21세기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시장원리 대외개방 신기술 국제협력 등을 꼽았다.

▽에너지의 국제정치학=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는 ‘석유 한 방울은 피 한 방울’이라고 말했다. ‘석유를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여전한 현실이다. 이라크 파병 논란도 에너지의 국제정치학으로 풀어볼 수 있다.

류 부장은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에너지확보 전략에 무임승차(無賃乘車)를 해왔다”고 말했다.

원유수입 세계 3위인 한국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에너지 확보를 위한 책임 분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라크 파병은 책임 분담이라는 설명.

기후변화협약은 에너지에 관한 국제 정치력이 각국 경제의 최대 변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96년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발표는 예정보다 2주일 남짓 지연됐다. 기후변화협약의 선진국 기준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규정한 97년 교토의정서 협상 때도 한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오진규(吳振圭)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 기준의 기후변화협약 조건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매년 1∼1.5%포인트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을 이끄는 두뇌들=연구위원 66명 가운데 박사급은 50명이다.

이 원장은 인하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9월부터 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환경경제학회, 환경정책학회 회장 등을 맡아 환경 분야에 밝다.

장기 수급 전망에 정통해 국내외 에너지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적임자로 꼽힌다. 동물 애호가로 공익요원이 연구원 뒤뜰에서 잡은 구렁이를 산에 다시 놓아줄 정도.

부원장격인 김진오 부장은 신재생에너지정책의 권위자. 연구와 보고서 작성을 즐기는 타고난 연구원이라는 평. 2002년 국책연구기관 평가에서 최우수보고서상을 받았다.

김진우(金鎭禹) 연구조정실장은 전력 전문가. 한전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 발이 넓고 대외 활동이 활발한 편. 소박한 인상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

문영석 정책분석실장은 석유, 에너지 수급, 환경, 에너지 산업 등 연구원 업무에 두루 정통하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등 종합적 에너지 정책을 담당한다. 소문난 학구파.

심상렬(沈相烈) 동북아에너지연구실장은 지역에너지 협력에 주력하고 있다. 동북아 국가간 에너지 협의체 구성을 이끌고 있다. 연구원보다 기업가 스타일로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

오진규 선임연구위원은 13년 동안 기후변화 연구만 맡아왔다. 92년 리우환경회의 등 기후변화협약에서 정부의 대외 협상논리와 정책개발을 이끌었다. OECD 가입협상 때 환경·에너지 관련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나인강(羅仁康) 연구위원은 에너지수급 분야의 중장기 전망과 분석모형 개발이 특기.

도현재(都賢宰) 연구위원은 에너지산업 자유화에 관심이 많고 국제 교류를 담당하고 있다.

박용덕(朴鏞德) 연구위원은 에너지 가격개편과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의 에너지 부문을 맡고 있다. 차분하고 논리가 정연하다는 평.

박창원(朴昌源) 연구위원은 가스 전문가로 ‘가스 박(朴)’ ‘박카스’ 등으로 불린다. 동북아 천연가스 연결망 등 해외자원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유승직(柳承直) 연구위원은 환경친화형 에너지 개발, 임재규(林在圭) 연구위원은 에너지전자상거래 등에 정통하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에너지경제硏 대외활동 ▼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외국에는 에너지 문제를 경제의 큰 틀에서 다루는 국책연구기관이 드문 데다 연구원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에너지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주변국과 에너지를 주고받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 문제가 절박해 국가적 과제로 연구에 주력한 셈.

덕분에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외국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은 자국의 에너지 연구기관의 모델로 한국의 에너지경제연구원을 지목했다.

중국 에너지연구원, 인도네시아 아시아에너지센터, 러시아 에너지시스템연구원, 이란 국제에너지연구협회 등은 2000년부터 잇따라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과 연구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연구원들의 국제무대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회성(李會晟) 전 원장은 1992년 무역분야의 세계무역기구(WTO)로 불리는 ‘기후협약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으로 선출돼 5년 동안 세계 환경·에너지 전략의 방향을 주도했다. 그가 95년 세계 석학 300여명과 만든 IPCC보고서는 97년 교토의정서를 탄생시키는 데 기초가 됐다.

당시 기후변화협약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 지위(선진국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약함)를 적용받은 것은 이 전 원장이나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영향이 컸다.

류지철(柳志喆) 에너지정책연구부장은 96년부터 일본 도쿄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에너지연구소(APERC)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방기열(房基烈) 선임연구위원은 91년부터 7년 동안 호주에 있는 국제기구 ‘천연에너지포럼(MEF)’ 사무국장을 맡았다.

김종덕(金鍾德) 연구원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절약전문가회의 의장을 지냈고, 김진오(金鎭五) 경제분석연구부장은 91년부터 3년 동안 유엔 산하 아시아태평양개발센터(APDC)에서 연구 업무를 맡았다.

류 연구부장은 “활발한 해외 활동으로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경험을 쌓았다”며 국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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