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점검 김포-파주 신도시]<上>멀고먼 자족 도시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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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계획된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는 ‘절반의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폭등하던 집값을 진정시킨 ‘공로’는 있었지만 서울지역 출퇴근자용 ‘베드타운(bed town)’에 머물러 수도권 일대의 교통난을 가중시킨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여년 만에 다시 수도권 집값 안정을 목표로 김포와 파주에 신도시를 건설키로 했다. 그런데 정부의 구상안(案)은 기존의 5개 신도시가 보여준 문제점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3회에 걸쳐 입체적으로 점검한다.》

“김포·파주 신도시는 자족(自足) 기능을 갖춘 계획도시가 될 것입니다.”

건설교통부는 9일 김포와 파주 신도시의 기본계획안을 공개하면서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부의 구상에 대해 자족형 신도시로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부가 서울 주변에 조성하는 택지지구 가운데 하나일 뿐인 김포와 파주의 택지지구를 ‘신도시’로 포장해 비싼 값에 팔려는 이미지 조작을 벌이는 것”이라는 듣기 거북한 혹평도 나온다.

▽정부의 2개 신도시 구상=우선 김포신도시는 전체 면적(480만평)의 10%가 넘는 49만평이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업무 관련 용지로 배정됐다.

핵심시설은 14만평 규모의 ‘도시지원용지’로 첨단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용지이다. 또 도시지원용지에 들어설 기업들이 생산한 물품을 판매하거나 보관할 창고를 짓기 위해 ‘지식산업용지’와 ‘연구업무시설용지’ 24만평과 10만평이 각각 배정됐다.

여기에 김포신도시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들어설 김포경제특구(김포매립지와 주변 일대 542만평 규모)에 근무할 외국인을 겨냥해 ‘국제 교류촌(5만평)’도 조성키로 했다.

이와 함께 현재 사업성 검토단계에 있는 양촌지방산업단지(40만평)도 신도시 거주자에게 적잖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으로 건교부는 분석한다.

또 파주신도시는 주변에 들어설 각종 산업단지와 연계해 자족 기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즉 △LG필립스LCD공장(50만평) △국가산업단지인 파주출판문화단지(47만평)와 탄현영세중소기업전용단지(2만4000평) △문발1·2, 금파, 파주오산, 탄현 등 5개 지방산업단지(18만5000평) △고양국제전시장(10만평) 등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

여기에 남북 관계가 호전되면 통일을 대비한 지역거점으로 파주신도시를 활용하겠다는 게 건교부의 복안이다.


▽자족도시, 기대하기 어렵다=이 같은 정부 계획에 대해 전문가는 물론 현지 주민들도 미더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 많다.

권영덕(權寧德)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계획설계연구부장은 “자족형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산업·업무·상업시설 등 일자리를 만들어 줄 시설의 유치 계획→학교·공공서비스기관 등의 지원시설 건설계획→주택 건설계획의 순서로 설계돼야 한다”며 “분당 등 5개 신도시가 역순(逆順)으로 진행되며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했는데 김포·파주 신도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포의 경우 신도시의 자족 기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김포경제특구가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이후 삐걱거리는 것도 자족형 신도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풍무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48)는 “자족형 신도시는 장밋빛 전망일 뿐 어떤 업무지원시설이 들어서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인천이나 서울 출퇴근자의 베드타운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주의 경우 신도시 개발 계획이 경기도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인 파주시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족형 신도시로 보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김우진(金宇鎭) 주거환경연구원장은 “정부가 ‘택지개발지구’로 개발키로 했던 곳을 집값 안정을 위한 ‘심리적 효과’를 노려 신도시로 바꾼 흔적이 역력하다”며 “현재보다 많은 인프라를 설치하지 않으면 교통난 등 적잖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비 조달도 문제=‘김포·파주 신도시’ 건설에 필요한 토지매입 및 도로 건설비는 각각 7조4000억원과 5조7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 비용을 모두 신도시 개발 이익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하지만 두 지역 모두 수도권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곳이어서 정부 계획대로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N사’의 K사장은 “김포나 파주는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해 소비자의 선호도가 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며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도록 산업시설과 특수목적고를 조성하는 등 기반시설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김포=차지완기자 cha@donga.com

파주=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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