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재건축 분담금상승 "금융비용 과다" vs "추가비용 발생"

  • 입력 2003년 2월 25일 17시 50분


코멘트
“3년 동안 공사비가 37%나 올랐어요. 아파트 철거가 내일 모레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공사비를 더 내라는 게 말이 됩니까.”

1999년 7월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아파트 4단지 재건축조합 창립 총회장. 사업 추진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총 공사비로 3928억원을 책정했다.

3년여가 지난 작년 12월. 재건축조합은 사업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총회를 앞두고 공사비를 5377억원으로 확정 발표했다. 처음보다 무려 1449억원(37%)이나 올랐다.

조합과 시공사는 그간 금융비용과 설계비, 감리비 등 제(諸)사업경비(1083억원)가 추가로 발생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각종 사업경비 가운데 금융비용으로 책정된 669억원은 3년 전 이미 총공사비에 포함해 제시했던 것”이라며 “공사비는 그대로 둔 채 이 비용을 제사업경비로 따로 잡은 것은 기만 행위”라고 반박했다.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 내야 하는 분담금을 둘러싼 분쟁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공사의 무리한 금융비용 책정과 조합의 불투명한 사업관리에서 기인했다는 주민들의 주장과 사업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단가(單價) 인상이라는 조합과 시공사측 설명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주먹구구식 재건축 공사비〓잠실4단지 조합이 제시한 사업자금운영계획안에 따르면 평당 건축비는 266만원. 3년 전의 267만원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3년 전의 267만원 안에는 이주비에서 생기는 금융비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면 조합이 새로 확정한 건축비는 금융비용을 뺀 순수 건축비로만 구성돼 있다.

대신 금융비용을 제사업경비로 옮겼다. 건축비는 그대로이지만 기타 부대비용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금융비용이 이중으로 계산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시공사는 이주비 지급 등 추가 금융비용이 발생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3년 전 최초 공사비에도 이주비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상승하는 분담금〓분담금은 재건축사업의 총비용(공사비)에서 총수익(분양대금)을 뺀 나머지를 각 조합원들이 부담하는 돈이다.

문제는 분담금이 재건축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오르기 마련이라는 것. 잠실 4단지처럼 금융비용이 상승하거나 자재 값이 올랐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더구나 대법원 판례에서도 재건축을 하기로 처음 결의한 단계에서부터 조합이 분담금을 명시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 지키지 않는다. 조합과 시공사가 일부러 분담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A건설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은 짧게 잡아도 5년 이상 걸린다”며 “5년 뒤 공사비를 처음부터 정확히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재건축 승인권자인 각 지자체도 이와 관련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주민들이 합의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주민 참여 제한〓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담금 논란이 이는 요인. 조합과 시공사는 비전문가인 주민들을 상대로 사업과정을 이해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조합 운영은 ‘밀실 행정’에 가깝다.

조합은 분담금을 책정하면서 구성항목 일체를 사전에 정해 놓고 주민총회(관리처분총회) 때 통보한다. 재건축 추진과정에서 주민들이 배제돼 있었다. 그 때문에 통보 사항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어렵다.

일부 조합은 분담금 결정 내용을 주민이 아닌 언론에 먼저 배포하기도 한다. 주민 반응을 살피겠다는 의도다.

분담금 확정 시기가 주민이 아파트 철거를 위해 이주를 끝낸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사를 하기 전이라면 재건축을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곧 아파트가 헐리는 마당에 분담금 수용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현행 재건축사업 절차에서 분담금을 최종 결정하는 ‘관리처분총회’를 사업승인 이후에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없나〓일부 전문가는 6월 30일부터 시행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새 법은 △정비사업관리자(컨설팅 회사)가 조합원을 대신해 재건축사업 절차를 진행하고 △시군구청장이 민간 재건축사업의 인가권을 가지며 △시공사를 사업승인 뒤에 선정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대체 법안도 ‘신통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새 법안에는 추가부담금 문제를 해결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영세한 정비사업관리자가 특정 건설회사의 자금을 지원받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재건축정보제공회사인 미리주닷컴 김종수 총괄부장은 “기업의 사외이사처럼 조합원 이외의 이사와 감사를 선임해 추가부담금 결정 절차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을지 차흥권 변호사는 “새로 시행될 법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군구청장의 인가권을 최대한 활용해 인가 과정에서 추가부담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