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SK 변칙증여 수사]“他그룹도 검토” 이례적 공개

  • 입력 2003년 2월 17일 2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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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SK그룹의 변칙 증여 및 부당 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함에 따라 새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이달 초 △출자총액제한 제도 △증권분야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의 3대 재벌개혁 과제가 “흥정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검찰이 수사 중인 변칙 증여 및 부당 내부거래 혐의는 이 가운데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와 맥락이 닿아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새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는 게 재계 등의 관측이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상속세법에 구체적으로 상속증여 행위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상속증여 행위만 인정되면 과세할 수 있는 제도. 따라서 완전포괄주의가 실시될 경우 법망을 교묘히 피해 소액의 세금만 내고 지분을 취득, 경영권을 획득하는 재벌2세 등의 행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세법은 미리 규정한 12가지 상속증여 유형에 해당돼야 세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또 검찰이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끝나면 다른 그룹도 (수사)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도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은 보통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내사가 진행 중이더라도 수사 대상을 언급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전격적으로 실시된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도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재벌 수사에 나섰다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검찰은 17일 오전 9시경부터 오후 2시까지 SK그룹 회장실과 구조조정본부의 직원들을 전원 사무실에서 내보낸 뒤 외부와 통하는 사무실 전화를 끊고 압수수색을 벌였다. 입수한 자료는 사과박스 20여개 분량의 서류와 컴퓨터 프로그램 및 본체 등이었다.

검찰은 그러나 공식적으로 “참여연대가 SK그룹의 주식 이면거래 혐의를 고발해 수사를 하던 중 부당 내부거래 혐의를 포착했을 뿐 수사와 재벌개혁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SK그룹 외에 다른 그룹에 대한 수사는 아직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에 검사가 직접 나가 재벌사 회장실과 구조조정본부 등을 샅샅이 뒤지는 방식으로 압수수색을 벌인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수사를 담당한 서울지검 형사9부에 검사 2, 3명을 추가 투입키로 하는 등 사실상 ‘특별 수사팀’을 구성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노무현 당선자가 “가야할 길이라면 꾸준히 가겠다”며 재벌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다른 그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 등에서 다른 그룹들의 부당 내부거래 등에 대한 조사내용이 앞으로 줄줄이 검찰로 넘어올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SK 왜 문제됐나…崔회장 C&C株 ‘헐값매입’이 主표적▼

SK그룹이 검찰조사를 받게된 발단은 일단 다국적 금융회사인 JP모건과의 이면계약에 의한 뒷거래다. 그러나 최종 표적은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의 계열사 주식거래 과정에서의 변칙증여 의혹일 가능성이 높다.

▽최태원 회장의 상속과정에 편법 의혹=최 회장은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의 SK 지배권 확보는 주로 전환사채(CB)와 비상장 주식의 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의혹을 받고 있는 계열사간 주식거래는 2001년 1월 비상장사인 SK C&C와 계열사간에 이뤄졌다.

당시 SK글로벌은 SK㈜ 주식 1469만주(11.4%)를 SK C&C, SK건설 등 계열사와 외국인 투자자에게 매각했다. 특히 SK C&C에 SK㈜ 주식 269만주를 매각한 것이 의혹의 핵심. 이 거래로 ‘SK글로벌’ 대신 최 회장 지배 아래에 있던 ‘SK C&C’가 SK그룹의 지주회사로 부상했다. 최 회장은 이를 통해 SK㈜와 SK텔레콤 SK해운 SK글로벌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계열사간의 거래로만 볼 수 있으나 최 회장이 SK C&C의 주식을 얻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최 회장에 대한 편법증여 의혹이 드러난다. SK C&C의 전신은 대한텔레콤. 최 회장은 98년 1월 이 회사 주식 100만주를 매부와 함께 주당 400원에 증여받았다. 당시 참여연대가 이를 ‘부당 내부거래’라고 비판하자 SK그룹은 이 중 30%를 SK텔레콤에 무상증여하면서 타협했다. 이때 남은 70%의 주식이 최 회장이 SK C&C의 1대 주주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검찰은 또 작년 3월 SK C&C와 최 회장이 보유한 워커힐호텔 간 주식 맞교환 과정에서도 비상장사인 워커힐 주가를 2∼3배로 과도하게 평가해 시세차익을 얻었으며, 이 과정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SK측은 워커힐주가는 장부가에 근거해 관련규정대로 했기 때문에 법적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2001년 3월 “최태원 회장 소유의 SK C&C가 SK텔레콤의 전산 아웃소싱을 맡은 이후 SK텔레콤이 과다한 용역비를 지불했다”며 “이 결과 SK C&C의 매출이 6년 만에 200배나 성장하고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JP모건과의 이면계약=SK그룹은 작년 10월 JP모건이 가지고 있던 SK증권 주식 수천만주를 시중가격(1500원 수준)보다 4배가량 높은 6000원에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SK글로벌 등 계열사가 동원됐으며 JP모건쪽은 1000억원이 넘는 이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거래는 99년 JP모건쪽과 옵션거래를 위한 이면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당시 SK그룹은 JP모건과 2년여 끌어왔던 법정소송에 합의하면서 JP모건을 달래기 위해 이 같은 이면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SK와 JP모건쪽은 이 같은 이면계약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고, 사업보고서에 올리지도 않았다. 물론 양쪽은 이 같은 이면 계약 내용을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이에 대해 금감위가 작년 12월 JP모건과 이면계약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책임 등을 물어 SK증권에 대해 과징금 11억8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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