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충청권에선]<中>행정수도 '적지'는?

  • 입력 2003년 2월 1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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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고 박정희 대통령)이 수십 군데를 조사한 뒤 점찍은 지역이잖아. 또다시 조사를 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 테고….”

충남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이장 윤승현(尹承鉉·58)씨는 장기면 일대가 행정수도 이전지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표정이다. 기대감이 묻어 있지만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마을의 부동산중개업소가 2개에서 28개로 늘고 외지 차량이 북적대는 모습이 “1970년대 후반 박 대통령이 일명 ‘백지계획’을 세워 장기면으로 수도를 옮기려던 때와 똑같다”고 말했다.》

과연 행정수도는 어디에 마련될까? 충청권의 눈과 귀가 온통 행정수도 대상지로 쏠려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은 “아직 지도책도 펴놓지 않았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전 기관과 규모도 확정되지 않아 후보지 거론은 시기상조인 게 사실.

다만 노 당선자측은 △서울에서 멀지 않고 △공항 및 고속철도 등과 근접하며 △인프라 비용이 적게 들고 △인구 50만∼100만명 수용이 가능한 지역 등으로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후보지로 5개 지역이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공주(장기)-연기권, 논산 계룡신도시권, 천안-아산권(이상 충남), 대전 서남부권, 오송-오창권(충북) 등이다.

공주 장기는 남의 장군봉(354m), 북의 국사봉(213m) 등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분지. 주변으로 금강이 흘러 서울과 같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다. 30분 만에 대전과 청주에 닿을 수 있어 기존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경부고속철도와 청주공항과도 그다지 멀지 않고 호남고속철도의 경유 예정지라는 점도 장점.

논산시 두마면 계룡신도시는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닭이 알을 품은 형상의 명당’이라며 한양 천도 적지로 꼽은 지역. 70년대 백지계획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신도시 조성으로 이미 상당부분 도시개발이 이뤄져 있고 10여분 거리에 대전이 있어 ‘생활 인프라’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장점. 주변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어서 토지 취득도 쉬울 것으로 보인다.

대전 서남부 지구는 최근 국책연구기관 고위층이 유력 후보지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마-상월지구와 연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장점. 다만 이곳으로 행정수도가 옮겨지면 대전의 비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천안시 백석 불당지구를 포함해 2020년까지 870여만평 규모로 개발될 아산 신도시권은 올해 말 개통 예정인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고 청주공항도 가깝다. 신도시 계획이 이미 짜여져 있어 유리하다는 진단. 그러나 고속철도로 서울에서 30분 거리에 불과해 자칫 ‘건물만 옮겨오고 사람은 오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송-오창 지구는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이 큰 매력.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고 호남고속철도가 경유할 예정이다. 경부선 철도(조치원역)나 경부고속도로(청주 IC), 그리고 청주공항과 5∼10분 거리이고 중부고속도로가 관통한다. 오송생명과학단지(141만평)와 오창과학산업단지(286만평) 등 산업단지 건설을 위한 기반시설이 닦여 있는 것도 특징이다.

80년대 초 계룡대와 자운대(군 교육시설), 국정원 본부의 이전계획인 ‘620사업’에 참여했던 유상혁(劉相赫·도시계획학 박사) 대전시 도시계획과장은 “행정수도 후보지는 이전 및 개발비용이 적게 드는 곳이어야만 한다”며 ‘현실론’을 폈다.

그는 “이전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경제를 압박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최근 들어 점차 부상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정서를 극복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노 후보 당선 직후 각개전투식의 유치경쟁을 벌이던 충청권 자치단체들도 최근엔 일부의 이전반대 정서를 감안해 ‘공조’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꿨다. 섣부른 유치전으로 ‘김칫국’을 마시기보다는 공약이 이행되도록 정책을 ‘확정’짓는 데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염홍철(廉弘喆) 대전시장과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 이원종(李元鐘) 충북지사는 지난달 17일 충북도청에서 대전충청권행정협의회를 갖고 “행정수도 이전 공약 이행을 위해 공조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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