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손길승號 앞날은]새정부-재계 갈등 조율 관심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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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孫吉丞) SK 회장이 재계의 대표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이끌게 됐다.

손 회장은 ‘동북아 경제 협력체제’를 외쳐온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이며 회장직 수락 조건의 하나로 ‘재계의 변화’를 요구해 대(對)정부 관계나 전경련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을 끈다.

손 회장은 6일 오전 SK 사장단 회의에서 전경련 회장직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사람의 의무)와 정부-재계 협력을 강조했다. 손 회장은 “우리 경제의 활로인 동북아 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하려면 국력이 중국과 일본에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은 현재의 2배 이상이 돼야 한다. 이는 정부와 재계와 국민의 단합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화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계와 전경련이 신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전경련에 대해서도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드는 생산적인 싱크탱크가 될 것을 요구했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적극 지지=6일 손 회장의 수락을 발표한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비교적 부드럽게 일이 진행된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현 김각중(金珏中) 회장이 1999년 총회에서 추대되고도 나오지 않는 등 회장 선출 때마다 진통을 겪었던 것에 비하면 순조로웠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의 적극 지지가 있었다. 이 회장은 두 차례 이상 손 회장에게 전화해 전경련 회장직 수락을 설득했으며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도 손 회장을 직접 만나 이 회장의 뜻을 전달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진작부터 손 회장을 밀어왔다고 보고 있다.

전경련은 LG 구본무(具本茂) 회장과 현대기아자동차 정몽구(鄭夢九) 회장도 손 회장 체제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구본무 정몽구 등 ‘빅3’ 오너들이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진통이 예상됐던 전경련 회장 선출은 결국 4대 그룹 대표이면서 전문경영인인 손 회장에게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오너 기업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전경련에서 비(非)오너인 손 회장이 얼마나 회원들의 결속을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정부 관계 어떻게 풀까=손 회장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3대 재벌개혁’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야 한다.

전경련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과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정치권 일부에서는 전경련 개혁론이 나오고 있다.

손 회장은 평소 ‘정부와 기업은 협력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어 앞으로 대결 국면으로 치닫기보다는 협력하는 쪽으로 정부 정책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두 부회장도 6일 “우리의 기본 포지션은 정부와의 협력”이라면서 “전경련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업의 처방과 정부측 처방이 있는데 이를 서로 토론해서 보완하자는 것이지 정부안에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들은 내심 상속·증여세 포괄주의나 금융계열사 분리, 집단소송제 등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전경련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손길승 SK회장이 6일 전경련 회장직 수락 직전 고 최종현 SK회장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사진제공 SK

▼손길승은 누구▼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주요 그룹 중 유일한 비(非)오너 회장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몰락한 지금,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꼽히는 인물. SK의 손 회장 체제에 대해 오너 등극까지의 ‘과도기 체제’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가 한국 재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스스로 “일이 취미”라고 할 만큼의 회사일에 대한 헌신, 치밀한 논리와 큰 흐름을 읽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5년 그룹공채 1기로 SK에 입사한 그는 20여년 동안 경영기획실에 있으면서 SK의 급성장을 주도했다. ‘직업이 기획실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 워커힐호텔, 유공(현 SK㈜), SK증권,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SK생명 인수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성장사는 대부분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쳤다.

그가 정신적 스승이라고 부르는 고(故) 최종현(崔鍾賢) SK회장이 생전에 손 회장을 ‘부하직원이 아니라 사업동지’라고 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그 신임이 바탕이 돼 98년 최 회장 작고 후 오너인 최태원(崔泰源) 회장 대신 그룹 회장에 취임해 이른바 전문경영인과 대주주의 파트너십 경영을 시험하고 있다.

이번 전경련회장 취임 몇 년 전부터 이미 ‘동북아경제공동체’ 등 경제계를 선도하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재계 리더로서의 면모를 굳혀 왔다.

다만 상당히 보수적인 색깔로 알려져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관심이다.

손 회장은 41년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고를 나와 서울대 상대(59학번)를 거쳤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필곤 전 삼성물산 회장 등이 서울대 상대 동기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과는 진주중 동기, 서울대 상대 1년 선후배 사이로 50년 지기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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