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2002경제']<2>가계빚 급증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8시 12분


12월초 A은행 본점 영업부를 찾은 고객 K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미 3500만원을 대출받은 상태인 K씨는 본인 소유 1억원짜리 단독주택(방 3개)을 담보로 1000만원을 추가 대출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영업부 담당 차장은 “10월에 발표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셨군요”라며 오히려 대출상환을 재촉했다.

은행측 설명에 따르면 안정대책이 발표된 뒤 담보대출 가능금액은 △(감정가-선순위채권)×70(단독주택)∼80%(아파트)에서 △(감정가×60%)-선순위채권으로 바뀌었다.

안정대책 전에 K씨의 대출가능금액은 1억원에서 3200만원(소액임대차 방2개)을 뺀 6800만원에 담보인정비율 70%를 곱한 4760만원. 하지만 안정대책 이후에는 1억원의 60%인 6000만원에서 3200만원을 공제한 2800만원으로 줄었다. 이미 3500만원을 대출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700만원을 갚아야 할 형편이 된 것. 집값이 10% 떨어지면 K씨의 담보대출 가능금액은 다시 2200만원으로 줄어들고 1300만원을 갚아야 한다.

우리은행 영업부 이정권 차장은 “9월까지는 주택담보대출 상담자가 하루 40여명 정도였고 이중 절반은 대출이 이뤄졌다”며 “요즘은 상담자가 1명 정도이고 대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내수를 부양해 국내경기를 이끈 가계대출이 올 하반기에는 금융불안의 주범으로 등장했다.

정부는 10월 이후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인하, 담보대출시 개인신용평가 의무화 등 숨가쁘게 가계대출 억제조치를 내놓았다.

금융감독위원회 김석동 감독정책1국장은 “은행들이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했다”며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고 가계 입장에서도 신용불량자가 양산돼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정부 규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조이기는 정부 기대치를 넘어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올해 22∼23%로 추정되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내년에 10∼15%로 대폭 낮출 방침. 우리은행도 올해 93%에 달했던 증가율을 내년에 17%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11월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219조9482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59조2974억원 늘었다. 하지만 가계대출 창구가 얼어붙으면서 10월부터 가계대출 증가세는 현저히 떨어졌다. 가계대출의 급속한 위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박재환 정책기획국장은 “가계대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문제”라며 “가계대출 축소는 신용불량자 문제와도 연계되는 만큼 연착륙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