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2002경제']<1>기업 생존전략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7시 35분


《2002년 한국경제는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6%가 넘는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계대출 급증,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중국의 도전과 미국 엔론 사태 등 외부충격도 메가톤급이었다. 숨가쁜 변화와 도전, 사건사고들로 점철된 올해 경제계를 8회 시리즈로 되돌아본다.》

“지금 이익이 나더라도 기업 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회사는 정리한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라. 주어진 시간은 2005년말까지다.”

SK그룹 최고경영자들이 10월 제주도에서 3박4일간 마라톤회의를 가진 뒤 내놓은 결론은 사뭇 비장했다. ‘3년 시한부 생존시험’이라는 극약처방이 나온 이유는 손길승 회장의 절박감이 묻은 설명에서 알 수 있었다.

“세계경제는 갈수록 위험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할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올 상반기 국내기업들은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족감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올해 잘했다’와 ‘미래가 밝다’는 말은 다른 뜻이라는 냉엄한 현실인식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중국의 급성장. 많은 기업인들은 “5년 후에는 중국에 이길 만한 산업이 없다”며 걱정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때문인지 올해는 새 밀레니엄의 흥분 대신 21세기 생존의 밑그림을 찾느라 어느 해보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 한 해였다.

국내 제일의 기업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준비경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세계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많다. 지금부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 회장은 어느 해보다 자주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면서 분위기를 다잡았다. LG는 10월 ‘차세대 승부 주력사업’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내년에 화학과 전자 부문에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연구개발 인력도 2000여명을 추가 선발키로 한 것도 그 같은 미래의 승부를 위한 포석이다.

기업들은 기존의 업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래 생존에 도움만 된다면 자신의 주력 업종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주류사업에서 손떼고 중공업에 주력하는 듯했던 두산은 올해 고급위스키를 내놓으며 4년 만에 위스키시장에 복귀했다.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로 금융기업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식품업체인 제일제당은 생명공학분야를 미래 주력사업으로 선정, 해마다 수백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키로 했다. 패션업체에서 정보기술(IT)소재 종합업체로 탈바꿈한 제일모직의 사례가 21세기 국내기업들의 생존실험 모델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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