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윳돈 투자도 기업 능력

  • 입력 2002년 12월 3일 17시 45분


‘좋은 기업은 남아도는 돈을 불리는 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좋은 기업을 판별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남아도는 돈을 어떻게 불렸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투자 능력’은 기업의 전체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소중한 이익금을 엉뚱한 투자로 홀랑 날린 경험을 반복하는 회사에는 투자를 피하는 게 좋다. 남는 돈을 굴릴 때에도 주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가진 기업이라면 믿음을 가질 만하다.

▽아무렇게나 돈 쓴 회사〓2000년 초 유상증자를 통해 거금 3800억원을 손에 쥔 새롬기술. 당시 새롬은 이 돈으로 각종 벤처기업에 문어발식 투자를 시작했다.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좋으나 투자 시기가 문제였다. 2000년 5월, 벤처 열풍이 잦아들 무렵 새롬은 장외기업 NHN 주식을 주당 무려 8만원이 넘는 가격에 사들였다.

NHN이 10월 말 화려하게 코스닥에 등장했는데도 최근 주가가 4만원대인 것을 보면 당시 새롬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NHN 주식을 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새롬은 NHN 주식을 최근 팔기로 결정해 약 130억원의 손실을 확정지었다.

문제는 이 같은 실수를 ‘한 번의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새롬은 올해 상반기 지분법 평가손실이 100억원을 넘을 정도로 자회사가 부실하다. 투자는 많이 했는데 성공한 투자가 하나도 없다.

▽믿을만한 회사, 나아지는 회사〓대조적인 회사가 신도리코. 이 회사는 최근 현금 보유고가 3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돈이 많은 회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신도리코는 풍부한 현금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1997∼2000년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꾸준히 하나은행 주식을 매수한 것이 신도리코 투자 역사의 전부다. 1999년과 2000년 벤처 열풍이 화려했을 때에도 신도리코는 그 흔한 벤처기업 투자 한 번 하지 않았다.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했던 신도리코는 주가 하락기에 아무 두려움 없이 싼 가격으로 하나은행을 매수했다. 그리고 주가가 오르자 주거래은행과의 미묘한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과감히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신도리코와 달리 과거에는 영 시원찮았지만 최근 투자능력이 부쩍 나아진 회사도 있다. 그룹 관계사와 얽히고 설킨 지분관계를 과감히 정리하고 유망한 기업 선별 투자에 나서 좋은 성과를 올린 LG상사도 ‘개과천선’한 케이스로 꼽힌다.

▽투자실패사례-새롬기술

-2000년 5월

제휴 차원에서 NHN 주식을 주당

8만2000원에 매수.

총투자금액 250억원

→벤처 열풍 가라앉으면서 장외기업

주가가 최고일 때 투자 시작

-2002년 10월27일

투자자금 회수 목적으로 NHN 주식

매각. 당시 종가 기준으로

주당 4만원. 회수금 120억원으로

약 130억원 손실

▽투자성공사례-신도리코

-1997∼2000년

하나은행 주식을 주당 7800원에

850만주까지 집중 매수

→1999∼2000년 벤처 열풍 때도

벤처기업에 투자하지 않음

-1998∼2002년

하나은행 주가 오를 때마다 매도.

평균 매도 단가 1만2200원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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