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제 제물될라” 애널들 복지부동

  • 입력 2002년 11월 6일 18시 00분


애널리스트들이 일손을 놓았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애널리스트의 과감한 기업분석 보고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정공시제가 시행되면서 ‘초기에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사리는 애널리스트가 많기 때문.

공정공시제도가 안착되기까지는 애널리스트의 ‘태업’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용한 여의도〓15일은 12월 결산법인 3·4분기(7∼9월) 실적 발표 마감일. 이미 실적 집계를 끝내고 발표한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마감일 직전인 13∼15일 실적을 집중적으로 발표한다.

공정공시제만 아니었다면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바쁠 때가 요즘 같은 실적 발표 직전이다. 펀드매니저와 투자자로부터 “내가 투자한 기업 실적을 미리 알려달라”는 부탁이 줄을 잇기 때문.

과거에는 기업과 친분이 깊은 애널리스트가 담당 기업의 구체적인 실적을 완벽하게 알아낸 뒤 주요 고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이런 일이 거의 사라졌다. 공정공시제 시행 이후 평소 쉽게 얻을 수 있던 기업 정보가 차단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요령 있는 애널리스트는 공정공시제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달 말 이미 기업으로부터 주요 정보를 빼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를 펀드매니저 등 주요 고객에게 미리 슬쩍 알려줄 만큼 ‘배짱’있는 애널리스트는 많지 않은 것.

한 애널리스트는 “공정공시제 시행 초기 감독기관의 눈길이 온통 애널리스트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며 “솔직히 몇몇 기업의 실적을 완벽히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 말해주기가 겁이 나 조용히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공황〓애널리스트의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조용한 여의도’를 만드는 데 한몫 했다는 평가.

대신증권 강록희 연구원은 4일 기자들에게 “이달부터 공정공시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기업방문을 못할 것 같다. 당분간 기업 관련 분석자료를 못 보낼 것”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는 “각 회사의 기업설명(IR) 담당자가 공정공시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아 지금은 기업방문을 해봐야 얻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원처럼 아예 기업 방문을 포기하는 애널리스트가 적지 않다. ‘가 봐야 별 것 없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해 버리니 내용이 알찬 보고서가 나올 수 없는 상황.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뭔가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애널리스트들이 튀지 않고 조용히 지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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