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현대상선' 계열사에 돈 펑펑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54분


4억달러 대북송금설(說)의 진원시기인 2000년 4월 이후 현대상선의 자금흐름을 따라가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현대상선은 그해 3월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제2금융권이 빚을 거둬들이자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상선은 현대아산에 출자했고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이후에는 현대건설의 부도를 막기 위해 자금을 대주었다.


▽부실계열사 지원창구 역할〓산업은행은 “2000년 4∼5월 제2금융권이 4151억원을 갑자기 회수해 현대상선이 유동성위기에 빠지자 부도를 막기 위해 6월7일 4000억원을 긴급대출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자금난이 심각했던 5월26일 옛 현대전자 지분을 팔아 1579억원을 확보했으면서도 이 돈을 운영자금이 아닌 현대중공업 출자(1933억원)에 사용했다.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아닌 정몽헌(鄭夢憲) 회장에게 물려주기 위한 조치였다. 회사 자금난 해결보다 상속이 더 중요했던 것.

현대상선은 또 이날 적자투성이인 현대아산에 560억원을 출자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

산업은행은 6월7일 현대상선의 말만 믿고 4000억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다음날인 6월8일 곧바로 현대건설 기업어음(CP)을 1000억원어치나 샀고 5일 후에는 400억원어치를 더 샀다.

현대상선 자체가 자금난에 빠져 부도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계열사인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돈을 낭비했고 필요자금을 산업은행이 제공한 셈이다. 한편 현대상선은 그해 4월 자사가 대주주인 현대증권과 현대투신증권이 현대상선 CP 4000억원을 매입하는 약정서를 체결해 금융계열사의 자금을 활용하려 했으나 100억원밖에 인출하지 못했다.

▽현대상선 김충식 전 사장의 대북사업 반대〓당시 산업은행에서 현대상선을 담당했던 오규원(吳圭元) 전 이사는 “2000년 9, 10월 4000억원 당좌대출 만기를 전후해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을 여러 차례 만났다”면서 “김 전 사장이 대북사업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데 불만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김 전 사장이 ‘현대상선이 쓴 돈이 아니니 갚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상선은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당좌대출 만기연장을 요청했으나 일부라도 갚아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2번에 걸쳐 1700억원을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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