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주가 팍팍 띄워줄 CEO 찾습니다

  • 입력 2002년 9월 4일 17시 21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증시에서는 ‘최고경영자(CEO) 주가’라는 유행어가 새로 생겼다. CEO 주가란 훌륭한 CEO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회사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최근 증시에서는 이와 비슷한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회사 주가를 높일 만한 새로운 CEO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왜 CEO 주가에 대한 기대가 이처럼 사라지고 있을까.

▽CEO주가의 현실〓CEO주가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사례가 서두칠 사장의 일화. 지난해 7월 한국전기초자의 CEO였던 서 사장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 회사 주가가 반도막이 났다. 반면 서 사장이 새로 경영을 맡은 이스텔시스템즈 주가는 나흘 동안 70%나 급등했다.

‘시장을 아는 CEO’라는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 셋톱박스의 신화를 만든 휴맥스 변대규 사장 등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CEO로 거론됐다. “제2, 제3의 서두칠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증시에서는 회사의 주가를 좌우할 만한 CEO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철수 사장이 버티는 안철수연구소와 구조조정 전문가 이규상 사장이 회사를 살린 넥센타이어 정도가 CEO 주가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코스닥시장에서 더 심하다.

최근 많은 코스닥 벤처기업의 CEO가 교체됐지만 덕분에 회사 주가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대신증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CEO가 교체된 액면가 4000원 미만의 코스닥 등록기업 7개사는 주가가 월 초에 비해 모조리 떨어졌다.

▽‘역(逆)CEO 주가’〓오히려 한국 증시에서는 CEO 탓에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이 허다하다. 최근 CEO가 관계사 사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새롬기술, CEO가 비리 혐의로 구속된 뒤 경영권이 넘어간 장미디어 등이 그런 사례다.

전문가들은 우선 능력 있는 CEO가 기업을 장악할 분위기가 안 된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한 투자컨설팅 회사 대표는 “한국 오너들이 너무 회사에 대한 집착이 강해 자신과 성격도 비슷하고 충직한 사람만 CEO로 앉히려 한다”고 꼬집었다.

또 전문경영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소신과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오너 눈치를 더 보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회사는 CEO를 키우지 않고, CEO 후보들은 스스로 커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치투자자문 박정구 사장은 “한국 기업 문화는 오너 중심에서 CEO 중심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며 “기대만큼 전문성 있는 CEO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아직 기업 문화가 완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