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캔보리차, 실패냐 흙속 진주냐

  • 입력 2002년 7월 10일 18시 27분


가을대추(95년), 아침햇살(99년), 초록매실(99년) 등 새로운 개념의 음료를 잇달아 히트시켜 부도 직전의 회사를 살린 웅진식품 조운호(趙雲浩·40) 사장.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마케팅의 귀재’로 꼽힌다.

이런 조 사장이 “기존의 히트상품과 비교가 안 되는 대박 음료”라고 자신하며 2년 전 내놓은 ‘하늘보리’는 아직 실적이 신통치 않다. 이 제품은 보리차를 캔이나 페트병에 담아 팔고 있는 것으로 가정에서 마시는 보리차와 똑같다.

▼작년 매출 겨우 50억원▼

2000년 4월 시판된 하늘보리는 그 해 2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작년에는 50억원이었다. 이 정도로는 손익분기점(연매출 240억원) 달성도 어렵다.

음료업계에서는 “보리차를 돈을 받고 팔겠다는 발상은 너무 황당하다”며 하늘보리는 조 사장의 실수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웅진 측은 “아침햇살, 초록매실을 처음 내놓을 때도 업계에서는 무시하다가 나중에 모방상품을 만들어내기 바빴다”며 성공을 자신한다.

보리차의 상품화는 조 사장의 다른 히트상품 개발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평소 “한국인의 전통 먹을거리와 관련된 음료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외국 음료를 선호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콜라나 오렌지 주스보다는 한국인이 오랜 기간 먹어온 것과 관련된 음료를 선호한다는 것. 대추 쌀 매실을 원료로 만든 음료를 히트시켜 이를 입증했다.

또 8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차(茶)를 캔에 담아 파는 음료시장이 형성돼 90년대부터는 음료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커진 현상을 주목한다. 일본인이 평소 즐기는 차를 캔에 담아 파는 것처럼 한국인이 많이 마시는 보리차를 상품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

경쟁업체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가정에서 차를 끓이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필요해 돈을 주고 캔에 든 차를 사 마시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 그러나 보리차를 끓이는 과정은 훨씬 간단하므로 굳이 돈을 주고 사먹을 필요가 없다고 다른 업체들은 보고 있다.

▼“조만간 뜰것” “누가 사먹나”▼

또 소비자가 보리차를 사먹으려면 보리차를 끓이는 시간의 가치보다 하늘보리의 효용이 커야 하는데 500원짜리 하늘보리 캔 하나를 사는 것보다는 보리차를 직접 끓여먹는 것이 효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웅진 측은 “일본에서 차음료가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도 제품이 나온 지 5년 이후였다”며 “최근 맞벌이부부나 다이어트를 하는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하늘보리를 찾는 사람이 늘어 성공 여부는 2005년 이후에나 판단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과연 보리차를 돈을 받고 팔겠다는 발상은 마케팅 귀재의 실수일까, 아니면 범인(凡人)들이 ‘천재의 안목’을 못 알아보는 것일까.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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