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동산] ‘벤처빌딩’ 단타매매 극성

  • 입력 2002년 6월 3일 18시 24분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벤처집적시설(벤처빌딩) 제도가 빌딩 투기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벤처빌딩인 서울 서초구 S빌딩은 370억원 안팎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이미 매수자를 물색해 둔 터라 이르면 이달 말 주인이 바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이 빌딩은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 사옥이었으나 90년대 말 건설업체가 부도난 후 채권단이 관리해 오다 작년 11월 말 S사에 팔렸다. 이번에 또다시 빌딩이 팔리게 되면 불과 6개월 만에 주인이 바뀌는 셈.

이처럼 ‘단타매매’가 가능한 것은 거래 과세가 거의 없기 때문. 벤처빌딩으로 지정받은 건물을 취득하면 매매가의 5.8%인 취득·등록세가 전액 면제되며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업계에서는 S사가 빌딩의 법적 소유권을 넘겨받기 보름 전인 작년 11월 중순 이 건물을 벤처빌딩으로 지정받았으며 실제 계약은 그해 8월 말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어 전형적인 단타매매로 보고 있다. 세제 혜택을 노려 벤처빌딩으로 지정받은 뒤 소유권을 이전했다가 웃돈을 얹어 바로 되판다는 것.

실제 이 빌딩은 벤처빌딩으로 지정받긴 했으나 벤처기업들을 거의 입주시키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벤처빌딩은 전체 연면적의 70% 이상에 6개 이상의 벤처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이 같은 사례는 S사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 서울 강남지역의 8개 벤처빌딩이 제3자에게 매각됐다. 이 빌딩들은 모두 벤처빌딩 지정을 반려했거나 취소당했다. 매각 후 일반 기업체 사옥으로 쓰이거나 벤처기업 유치용으로는 애초부터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98년 이후 벤처빌딩으로 지정된 빌딩은 총 137개 동. 이 가운데 5월 말 현재 49개 빌딩의 지정이 취소됐다.

A컨설팅 관계자는 “벤처빌딩 제도를 악용해 단타매매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대형 빌딩가격이 오름세를 타면서 벤처빌딩을 투자용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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