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한 외국기업 CEO]인물-경영스타일

  • 입력 2002년 5월 15일 17시 54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주한 외국기업인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주한 외국기업인들
외국기업은 더 이상 한국 경제에서 ‘이방인’이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5000여개이던 외국기업 수가 1만1000여개로 늘어났다는 외형적 팽창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유무형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제 외국기업을 빼놓고는 한국 경제를 논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외국기업. 그 외국기업을 움직이고 있는 경영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국내기업의 경영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와 의식으로 기업문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새 얼굴’들이다.

▽“나는 친한파”〓동방의 작은 나라의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해 자칭 한국통이 된 이들은 한국과 맺은 인연을 사업과 연결시켜 뛰어난 실적을 내고 있다.

데트레프 놀덴 웰라코리아 사장은 ‘친한파(親韓派)’를 자처하는 대표적인 경영자. 한국의 머리 염색에 패션 개념을 도입했다는 평을 듣는 그는 85년 독일 웰라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 이듬해에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줄곧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다. 대학시절 한국학과 동아시아 경제학을 전공한 것이 한국과의 오랜 인연의 시작이었다.

한국 발령 3년 만에 대표이사로 발탁돼 13년이 된 장수 사장이다. 그의 명함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받은 ‘노태덕’이라는 한국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유창한 한국말로 ‘칠갑산’을 18번으로 부르는 그를 회사에선 ‘걸어다니는 홍보맨’이라고 부른다.

페덱스사의 찰스 아리나 지사장은 79년부터 82년까지 주한 미군으로 비무장지대 근방에서 근무한 경력이 한국과의 인연이 됐다.

영국계 담배회사 BAT코리아의 존 테일러 사장은 93년 한국에 부임한 이래 1년간 필리핀에서 근무한 기간을 빼고는 9년 가까이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로버트보쉬기전 디트마 케이 지거 사장도 95년 한국에 온 이후 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진로와 영국 위스키 제조업체인 얼라이드 도멕의 합작법인 진로발렌타인스의 데이비드 루카스 사장은 얼라이드 도멕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재무담당 이사로 일하다 98년10월 진로와의 협상팀 일원으로 일했다. 협상이 끝난 후 잔류를 자원해 새로 설립된 진로발렌타인스의 재무담당 부사장을 거쳐 사장직을 맡았다. 한국 생활 2년여 만에 한국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작년 초 결혼했다.

한국과 직접적인 인연은 아니라도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한국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슷한 지역의 사정에 밝다는 점이 사장 발탁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듀폰코리아 나이젤 버든 사장은 91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카펫 원사 사업을 담당한 이후 줄곧 아태지역에서 일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웨인 첨리 사장은 96년 이후 일본에 있는 퍼시픽 서비스 그룹의 매니저로 일본 한국 중국 대만 호주 시장의 유통업체에 대한 서비스 활동을 지원했던 경력이 있다.

‘한국화’를 위한 적극적이고 다양한 노력도 눈길을 끈다. 지게차 생산업체인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 본사의 케빈 리어든 사장은 사내 임원회의를 한국어로 진행할 만큼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젊은 피〓국내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평균 연령은 56세. 이에 비해 외국기업에는 30, 40대의 젊은 사장이 무척 많다. 모기업의 현지법인이라는 점도 있고 규모가 작은 편이기도 하지만 연공서열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과 필요에 따라 과감한 발탁 인사를 하는 기업문화의 특징이 보인다. 나이도 젊지만 한국에서 사장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초보 사장’들도 많다.

시밀락 분유로 잘 알려진 한국애보트 제임스 밀러 사장은 36세의 나이로 벌써 사장 3년차. 이 회사의 전세계 70여개 현지법인을 통틀어 최연소이며 키가 205㎝로 최장신 사장이기도 하다. 27세이던 93년 한국에 처음 와 재무담당 고문을 지냈고 99년 싱가포르 아태지역 재무담당본부장을 지낸 뒤 한국지사장에 올랐다. 스스로 “아시아쪽 나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열정 덕분인지 2년 연속 우수 현지법인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독일의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코리아의 타힐 후세인 사장(36), 마티아스 아이혼 아그파코리아 사장(41), 미국계 제약회사 한국릴리의 마크 존슨 사장(38) 등도 30대나 40대 초반의 ‘젊은 피’. 자일리톨 원료 제조업체로 유명한 다국적 식품원료 업체 다니스코 쿨토의 조원장 사장(45)은 88년 31세의 나이로 화이자 한국지사장으로 임명됐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은 41세이던 2000년부터 사장을 맡고 있다. 제롬 스톨 르노삼성자동차 사장도 사실상 사장으로서의 경력은 한국이 처음인 초보 사장이다.

▽한국 오려면 마케팅경력 쌓아라〓씨그램 코리아의 루츠 드숌프 사장은 “한국은 흥미로운 마케팅 대상”이라고 말한다. 술 문화가 특히 독특하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 시장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세계 어디를 가도 흔치 않다”고 한다.

주한 외국기업 경영자들 가운데 마케팅 전문가가 특히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각국을 상대하는 모기업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시장 공략도 하면서 마케팅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인 셈이다.

P&G 알 라즈와니 사장은 미국 본사에서 ‘신화’를 만든 사나이로 통했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인도계인 그는 샤민이라는 브랜드의 매니저를 맡아 95∼96 회계연도 당시 매출 점유율 이윤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P&G에서 최근 40여년간 최고의 기록으로 꼽힌다.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중국권 화장지 사업부 사장을 거쳐 한국법인 사장을 맡았다. 부인과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일로 대부분의 주말을 보낸다.

마이클 켈리 한국 3M사장도 81년 입사해 84년부터 마케팅 영업 쪽을 주로 해왔다. 제약업체인 한국파마시아의 얀 피터세 사장은 미국 파마시아 본사에서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마케팅 담당을 지내는 등 28년간 영업과 마케팅 분야를 걸어온 마케팅맨.

볼보코리아 이동명사장도 16년간 세일즈맨으로 일하면서 쌓은 영업력이 주무기다.

▽외국기업의 한국 경영자들〓외국기업의 경영자가 모두 외국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70% 정도는 한국인이다. 특히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정보기술(IT) 분야 외국기업은 대부분 한국인이 사장을 맡고 있다.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TMC의 최고경영자는 한국인인 이재욱회장. 대한광학 대우전자 등을 거쳐 86년부터 노키아를 이끌고 있다. 지일상 한국컴퓨터어쏘시에이트 사장은 98년말 마케팅 과장으로 입사해 부장과 이사를 거쳐 3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고현진사장, 한국 EMC 정형문 대표, 정보 스토리지 기업인 볼랜드코리아 최기봉 지사장, 오픈웨이브 코리아 서정선사장, 삼성전자 출신인 소니코리아 이명우 사장, 도시바코리아 차인덕 사장 등이 외국계 IT기업의 토종 경영자들이다.

IT분야에도 외국인 사장은 있다. 애플 코리아 앤드루 세지윅 사장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한국 시장에 흥미를 느껴 한국에 오게 됐다”고 얘기한다.

반면 금융업종 경영자는 대개 외국인이다. 아직은 한국의 금융 기법이나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네덜란드계 ING생명보험 요스트 케네만스, HSBC 존 블랜손, 알리안츠생명 미셸 캉페아뉴, AIG생명보험 케네스 조셉 주노 사장 등이 모두 파란 눈의 외국 경영자들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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