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부쩍 큰 ‘옵션’ 증시 쥐락펴락

  • 입력 2002년 5월 9일 17시 38분


9일 오후 3시. 1.03포인트 오름세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종합주가지수가 후장 동시호가 10분 동안 6포인트 내림세로 곤두박질쳤다. 1377억원이던 5월물 옵션 만기에 따른 프로그램 매도 주문이 마지막 10분 동안 7255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옵션시장이 주식현물시장을 사정없이 끌어내린 것. 이런 일을 두고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고 한다.

▽파생상품시장의 위력〓이날 주가지수는 전날보다 20.63포인트 오른 865.30으로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옵션 만기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심리와 프로그램 매물 때문에 내림세를 계속했다. 주가지수는 결국 오후 1시25분 전날 대비 내림세로 돌아선 뒤 보합선을 오락가락하다가 후장 동시호가에서 맥없이 쓰러진 것. 김경신 브릿지증권 상무는 “미국 증시의 상승 덕분에 프로그램 매물 규모에 비하면 주가지수 하락폭이 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파생상품인 옵션이 현물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옵션시장은 거래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이기 때문이다. 97년 개장한 후 4년 만에 거래량이 181배나 늘었다(그래프 참조).

특히 지난해 9·11테러 직후 옵션거래로 500배의 이익을 올린 사람이 나왔다는 소문이 알려진 후부터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어 4월 현재 개인투자자 비중은 64.5%다. 또 증권사 수수료 수입 가운데 전담투자상담사를 통한 선물 및 옵션 수수료 비중이 34.2%로 집계되는 등 증권사들도 투자자에게 옵션거래를 적극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전산용량〓이날 오후 2시40분. 증권거래소 3층 전산실에 설치된 옵션거래 체결 단말기로 주문이 폭증하면서 체결지연 시간이 4분을 넘고 있었다. 증권거래소 간부들은 체결중단 상황이 벌어질까봐 전날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투자자 증가로 옵션시장은 만성적인 전산 용량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거래소는 97년 당시 2002년까지는 하루 25만건의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가 2001년 초와 2002년 초 각각 하루 처리 용량을 40만건과 50만건으로 늘렸다.

그러나 주문은 계속 늘어 4월3일에는 사상 최초로 5분 동안 호가접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9일 옵션 주문은 사상 최대치인 66만2700건을, 거래량도 역시 최대치인 1265만7028계약을 기록했다.

거래소는 9월까지 110만건을 처리하도록 시스템을 바꿀 계획. 그러나 일부 증권사는 최근 1초에 3.5건의 주문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수입하는 등 더 빨리 더 많은 주문을 내는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할 것으로 보여 숨바꼭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냐 투기냐〓시장에서는 옵션시장이 본래의 위험회피(헤징)기능에서 벗어나 투기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조익재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옵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국인 특유의 투기 심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복권을 사듯 옵션 거래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김경신 상무도 “충분한 지식과 능력을 가졌다면 모르지만 운이 좋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뛰어든 투자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옵션시장은 아직 틀을 잡아가는 단계이며 투기세력이 있어야 시장의 유동성이 확보돼 위험회피 목적의 헤징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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