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세/공기업 민영화는 대세다

  • 입력 2002년 2월 28일 18시 44분


공기업 민영화가 물 건너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사코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민영화의 역사와 노정간 협상 타결과정을 볼 때 믿기 어렵다. 여야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서로에게 이 ‘뜨거운 감자’를 넘기기에 급급하다. 정권 초기 68개 공기업을 민영화 또는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결국 22개에 그친 채 흐지부지되었던 문민정부 민영화의 재판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가스, 발전, 철도 운영 민영화의 당위성은 결코 신자유주의에 물든 일부 경제학자의 주장이 아니다. 다수의 전문가는 물론 정부, 여야 모두 원칙에 동의한다. 그런데 왜 서로 발뺌하기에만 바쁜 것일까. 바로 올해 있을 두 차례의 선거 때문이다.

▼정치권 선거의식해 발뺌만▼

여권 정치인들은 여당의 주요 세력기반인 노조와 근로자의 표를 의식해 오랜 준비과정과 작업을 거쳐 추진 중인 민영화에 시기상조 운운하며 딴죽을 걸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바라고 있다. 이는 노동계의 표는 다독거리면서 민영화 좌절의 책임은 야당에 떠넘기려는 전략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내심 정부·여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임기 내에 예정대로 민영화를 밀어붙이기를 바라고 있다. 노동계 표가 야당으로 몰려 차기 지자체 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우선 좋고,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 차기 정권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어지니 더 좋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와중에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와 노조의 강력한 저항은 필연적으로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민영화는 대세다. 1980년대 영국은 사회주의적 정책에 찌들어 쇠퇴한 국가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공기업 소유, 경영권의 민간이양, 시장경쟁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경제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산업 경쟁력은 강화되어 오늘날까지 ‘불황을 모르는 영국경제’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영국의 민영화 정책은 정부 축소 및 규제 완화에 발맞추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으며, 1993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3300개의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지금은 심지어 중국까지도 민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민영화는 바로 지금이 적기다. 민간 자본의 부족과 신속한 경제 발전에 대한 국민적 욕구에 부응해 공기업이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다. 공공성이 크지 않은 부문은 과감히 민간의 이윤동기와 경쟁논리에 맡겨야 한다. 공익성이 큰 부문은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혁신이 담보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가스 발전 철도운영은 민간에 넘기고 필수 병목설비인 전력 송·배전과 철도망 소유는 국가가 담당한다는 내용의 현행 민영화안은 합리적이다.

노정간 협상에서 주요 쟁점은 요금상승과 수급균형에 관한 우려, 그리고 노동조건의 개선이었다.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으면 올려야 한다. 철도사업은 원가의 60%에 불과한 요금과 수익사업 부재로 매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이를 국민의 혈세로 메우고 있다. 철도를 이용하지 않는 시민이 철도 이용객에게 돈을 대주고 있는 꼴이다.

▼더 미루면 국가경쟁력에 타격▼

일부 공기업의 근로조건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 열악한 근로조건은 경영 주체가 정부든 민간이든 상관없이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공기업 체제에서는 견딜 만했던 근로조건이 민영화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논리는 기존 체제가 국민의 혈세로 상당한 이득을 보장해왔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고용 불안 문제도 공세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영화는 공기업 체제에서는 한계가 있던 각종 수익사업을 적극 개발해 인력 수요를 늘리고 시민에 대한 서비스도 개선하는 ‘윈-윈(win-win)’ 게임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민영화가 물 건너간다면 국민후생과 국가경쟁력은 그만큼 손실을 입게 된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민영화를 지지한다면, 그토록 우려하는 표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7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아르헨티나는 일부 계층의 인기에 영합한 소위 ‘패론식 정치’의 결과 국가부도와 폭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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