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파산에 회계제도-관행 개혁 목소리

  • 입력 2002년 2월 14일 17시 45분


세계 최고의 투명성을 자랑해온 미국의 회계제도가 엔론 파산사태로 흔들리면서 ‘미국식’ 특징이 두드러진 국내 회계제도도 바닥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14일 “엔론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서 앤더슨의 부실회계가 ‘시스템의 실패’에 따른 것이란 자성론이 최근 일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놓았던 미 회계제도 개선안은 이미 의회로 넘어가 ‘대수술’을 기다리는 형편. 전문가들은 한국판 엔론사건도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회계감사하면서 컨설팅도〓아서 앤더슨 그룹은 2000년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아 2500만달러를 받았지만 컨설팅 등 기타수수료로 2700만달러를 벌었다. 감사외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서릿발 감사는 어려워질 게 뻔하다.

미 증권감독위원회(SEC)는 회계감사 법인이 같은 감사대상 기업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갖춘 뒤에야’ 컨설팅을 하도록 허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디즈니랜드가 “현 감사법인인 PWC에 다른 일감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계기로 미 하원은 아예 감사주체와 컨설팅 주체를 완전히 나누는 쪽으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아서 앤더슨, KPMG, PWC 등 메이저 회계법인들도 회계감사를 하면서 따로 컨설팅 자회사를 세워 동시에 컨설팅을 해주는 사례가 많다.

▽회계사협회, 감시기능 부실〓미국은 회계사협회(AICPA)내 감리위원회가 부실감사를 제재한다. 그러나 운영예산을 회원사에 의존하는 데다 조사 소환권도 없어 해당 회계법인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제재결정을 내리는 형편.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상장등록사 부실감사를 조사하고 제재한다. 그러나 비상장등록기업에 대한 부실감사는 회계사 이익단체인 한국공인회계사협회에 맡겨두고 있다.

▽오랜 인연으로 유착관계 형성〓아서 앤더슨은 80년대부터 줄곧 엔론 감사를 맡았고 이 바람에 유착(癒着)관계가 형성됐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상장등록법인의 경우 3년마다 주총에서 감사법인을 바꿀 수 있지만 기업들은 ‘정보가 샌다’며 감사법인 교체에 소극적이다. 더욱이 회계법인들은 대개 고객사를 전담 회계사에게 맡기므로 ‘유착을 사주한다’는 비판마저 듣고 있다.

▽기업 내부 감사가 허술하다〓SEC는 ‘기업 내부감사인은 재정적으로 독립돼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엔론의 내부감사인 6명중 1명은 7만2000달러어치 컨설팅 계약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 2명도 기부금을 받은 대학교수들.

국내사정은 훨씬 취약하다. 상장등록기업에 대해서조차 감사인 자격규정이 허술하다. 투자자들의 감시가 소홀한 중소기업에서는 대주주의 지인을 선임하곤 한다. 회계전문가들은 “최소한의 감사조차 못하는 감사인이 수두룩하다”고 혀를 차고 있다.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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