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 참사]불황 한국경제 "엎친데 덮친격"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44분


사상 최악의 테러사건이라는 ‘미국발(發) 초대형 돌발악재’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수출차질 물가불안 등에 따른 경기침체 장기화는 물론 증시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도 직격탄을 던질 전망이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우리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실상의 ‘경제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나선 것도 파장이 간단치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외자유치 협상에도 악영향이 예상되며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기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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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처, 거시정책 부분조정 검토 착수
- 항공운항 중단…하루 2500만달러 수출차질
- 현대투신 매각 '불똥'

▽실물경제 악화 불가피〓이번 사건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대외변수인 미국의 소비 및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대미(對美)수출에 차질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심상달(沈相達) 연구위원은 “미국경제 회복 지연과 세계 교역 위축으로 우리 수출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특히 미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자원부는 미국의 항공편 운항 중단으로 당장 단기적으로 반도체 등 하루 2500만달러 가량의 대미 수출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에서 예정됐던 한국기업의 수출상담일정도 이번 사건 후 모두 취소됐다. 수출부진이 투자 및 소비심리 악화로까지 이어질 경우 3·4분기 및 4·4분기 국내 경제성장률도 예상보다 낮아지면서 경기회복은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이번 사건의 여파로 유가 인상과 수출 감소가 겹치면서 한국경제가 최소한 25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시장에서 유가와 각종 원자재가격이 치솟으면서 국내물가에도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8월 말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말보다 벌써 3.5%나 오를 만큼 ‘빨간 불’이 켜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여오는 두바이유의 10월 인도분 가격은 6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26달러대에 진입해 곧 국내물가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힌다.

▽증시 및 외환시장도 휘청거릴 듯〓이번 사태는 실물부문과 함께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작은 나스닥’으로까지 불릴 만큼 미국 증시와의 동조화가 심한 우리 증시는 뉴욕증시가 정상적으로 되돌아갈 때까지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 국내증시는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34%를 외국인이 차지할 만큼 외국인 비중이 커져 있다. 국내증시에 호재가 별로 없는 현실에서 미국증시 움직임에 민감한 외국인들이 매물을 내놓는다면 우리 증시가 버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게 되면 최근 다소 안정세를 보였던 원화가치는 강세(원화환율은 하락)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내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연쇄적인 악영향도 예상된다. 미국의 해외투자가 위축되면 현재 진행중인 대우자동차 현대투신 등의 매각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정부, 본격적인 경기부양책 추진할 듯〓이번 사태는 당초 4·4분기쯤이면 미국경제가 회복기로 돌아설 것으로 전제하고 경제정책을 펴온 한국정부에 상당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경제 침체가 길어질 경우 불가피하게 정책을 손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이 예상 이상으로 크다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여기까지 갈 경우 정부는 재정불안에도 불구하고 ‘2003년 균형재정’이란 목표를 미루고 재정확대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정부는 연초에 마련한 3단계 비상대책 중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3단계 대책을 12일부터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3단계 대책이란 미국 경제 성장률이 1%대 미만, 세계 경제 성장률이 1∼2% 미만일 경우 적자국채 발행과 추가금리인하 등 ‘내수 살리기’에 적극 나선다는 내용.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이날 “미국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질 경우에 대비해 재정과 금융분야에서 내수 진작을 위한 3단계 대책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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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최영해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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