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경제위기/上]선심정책 남발하다 나라빚 눈덩이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33분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서 국가 명운(명운)이 좌우된다. 지도부가 치밀한 중장기 국가전략을 갖고 슬기롭게 이겨나가면 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된다. 반면 단기간 인기에만 급급하고 국제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국가는 갈수록 나락(나락)의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닥친 경제위기를 계기로 지난 10여년새 국가위기를 맞은 나라들의 성공 및 실패사례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이 나아갈 길을 찾아본다.》

▼글싣는 순서▼
- (上)선심정책 남발하다 나라빚 눈덩이
- (中)무리한 시장개입 경쟁력 약화 불러
- (下)"한국은 미래전략과 리더십 갖췄나"

아르헨티나 금융위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최근 각종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상위권에 단골로 오르는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북유럽 국가들도 80년대초 오일쇼크 때 극심한 불황에 빠져 고생한 적이 있다. 이 나라들은 90년대 들어 과감한 규제완화와 체계적인 국가전략을 발판 삼아 ‘부자나라’로 발돋움해 주변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똑같이 위기를 겪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중남미와 북유럽. 한국이 가야할 길은 자명하다.


▽중남미와 한국의 다른 점〓삼성경제연구소 김정렬 박사는 중남미 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구조조정의 실패와 정치적 불안의 지속 △과다한 대외자본 의존도 △방만한 재정운영과 만성적인 재정적자 △미숙한 경제정책 운용 등을 꼽았다.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직접적 이유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공부채 때문. 아르헨티나의 공공부채는 작년말 현재 1280억달러이고 이 가운데 순수외채만 880억달러에 이른다.

반면 90년대 중반 이후 만성적인 경상수지에 시달리는 바람에 외환보유고는 260억달러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 원리금 29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77억달러의 빚을 갚아야 할 처지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서둘러 자금을 빼내는 것은 이처럼 정부의 금고가 비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런 점에서 중남미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형편이 좋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는 견고한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제조업 분야에서 내세울 만한 업종과 대표 기업이 부족하다.

한국은 반도체 디지털가전 등 첨단산업은 물론 조선 철강 등 ‘중후장대형’ 산업에서도 일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상황분석팀 이인우 부장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먹고사는 것의 대부분을 외자에 의존하다 보니 부채상환 시기가 돌아올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한국은 중남미와 다르다”고 말했다.

▽중남미와 닮은 점에 주목해야〓아르헨티나 위기의 핵심은 과도한 재정적자와 경제정책의 실패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국가부채를 늘려 가뜩이나 취약한 재정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98년 이후 3년 넘게 경기가 불황에 빠져 있는 점도 경제주체와 외국인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불어났다. 국가부채 규모를 놓고 정부(120조원)와 야당(1000조원)측의 주장이 팽팽하지만 나라 빚 문제는 경제운용의 중요 변수가 됐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몇몇 정책에 대해서도 내년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혐의가 짙다고 주장한다. 신축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면제 범위 확대 등을 통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관리를 완화한 조치들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다가 정부 지출이 필요해지면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는 공적자금과 같은 일종의 빚을 내어 해결하려는 발상도 유럽보다는 중남미와 가깝다는 분석.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거시경제실장은 “한국과 중남미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경제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들이 불거져 불필요하게 불안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아르헨티나 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정책의 메커니즘은 과연 얼마나 건전한지, 정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국가전략은 앞날을 내다보고 체계적으로 수립 집행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박원재·박중현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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