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정치논리에 경제 또 멍드나

  • 입력 2001년 4월 29일 18시 38분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논리가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정책에 차질이 적지 않았고 구조조정도 늦어졌다.”

경제부처 고위인사들이 그동안 공사석에서 자주 털어놓은 말이다. 작년말 동아일보가 현정부의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경제정책의 폐해를 집중분석하는 과정에서 조언해준 예종석(芮鍾碩)한양대교수 정문건(丁文建)삼성경제연구소 전무 등 민간 경제전문가들도 한결같이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릴경우 적잖은 부작용이 따른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정책 주도권, 여당으로〓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정부도 올해 초 ‘경제정책 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칙과 정도(正道)’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경제부처에서 여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의 다짐은 무색해지고 있다. 재경부 등 경제부처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주요 경제정책이 집권당의 정권재창출 선거전략에 따라 수립, 집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저항하는 경제관료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주요 경제장관들은 경제부처간 경제정책 조정회의에 참석하기보다 민주당에 불려가기 바쁘다.

▽재정악화 등 부작용 만만찮아〓경제정책이 경제부처의 손을 떠나 여당 주도로 이뤄질 경우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는 최근 나온 일련의 증시정책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정협의 등을 통해 발표된 각종 증시부양대책, 특히 주식투자자에 대한 세금감면과 연기금의 증시투입 확대 등은 주가하락에 따른 경제적 악영향을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결국 주식투자자들의 표를 의식해 일단 주가를 끌어올리고 보자는 발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 때문에 ‘세제(稅制)정책이 주가부양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많다.

최근 여당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재정건전화 특별법 수정논의 등은 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재경부 및 예산처 당국자들은 “실물경기가 아직 본격적으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 쉽게 추경예산에 의존해버리면 가뜩이나 불안한 재정이 더욱 나빠져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4월초부터 정책위를 중심으로 추경예산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민주당측은 진부총리가 “아직 추경예산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는데도 “앞으로 추경예산을 짤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여당이 재정건전화 특별법의 핵심인 세계(歲計)잉여금을 우선 국채 상환 등에 쓰자는 예산처의 방침을 뒤집어 추경편성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우선 곶감을 빼먹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경제전문가는 “민주당의 이런 방침이 정책으로 연결될 경우 다음 정부는 재정악화로 크게 고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 다가올수록 두드러질까 걱정〓대통령선거 등을 겨냥한 여당의 경제정책 관여는 앞으로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선거를 의식해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97년에도 경제부처의 정책건의가 여야의 정치논리에 밀려 표류하면서 결국 외환위기로 이어진 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외풍(外風)에 대해 진념(陳稔)경제부총리와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 등 경제부처 핵심인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도 주목된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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