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압박카드에 유통업체 울상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40분


“언제는 유통 근대화에 기여한다고 부추기더니 이제는 중소상인을 죽이는 주범으로 취급하느냐.”

국내 대형 할인점업체들이 20일 한결같이 터뜨린 볼멘소리. 셔틀버스 금지법안에 이어 정부가 발표한 자연녹지 내 할인점 형질변경면적 유지방침을 유통업계에 대한 ‘전방위 압박 카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부는 요즘 ‘미운 털 박힐까’ 쉬쉬하고 있지만 유통업체들의 불만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가 2만㎡로 늘려달라고 건의했던 자연녹지 내 대형 할인점의 형질변경 허용면적을 종래 1만㎡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난개발 및 교통체증의 우려가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은 “당초 자연녹지 내 할인점을 인가해줬던 이유를 정부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고 꼬집었다. 96년 8월 정부는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할인점 신규출점을 쉽게 하고 유통업체를 교외에 세워 도심의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자연녹지를 풀어준다”고 밝혔던 것.

현재 자연녹지 안에 세워진 할인점은 신세계 이마트 청주점과 원주점, 뉴코아 킴스클럽 순천점, LG마트 춘천점 등 4곳이다. 이밖에 롯데 마그넷이 건설중인 충남 서산점과 서울 염곡동점이 자연녹지에 들어설 예정.

점포수가 많지 않은 이유는 현재 규정대로는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다는 할인점들의 판단 때문이다. 현 규정인 1만㎡(약 3000평)에 건폐율 20%, 용적률 100%에 따라 할인점을 세울 경우 적정 매장규모 확보를 위해 5층 이상으로 층수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투자비가 많아져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다는 게 할인점업계의 주장.

국회 파행으로 늦어지고 있지만 계류중인 셔틀버스 금지법안도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는데다 건설교통부가 내년 교통유발분담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이어서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지방경제 활성화’라는 대의에 따라 재래시장, 중소유통업자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경기 불황 때 그나마 장사가 되는 할인점과 백화점을 압박해 소비시장을 ‘하향 평준화’하면 전체 소비시장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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