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의 날-구두닦이 스토리...10원 벌면 당일 9원 저축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형님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걸 보고 모진 마음을 먹었습니다.”

37회 저축의 날을 맞아 대상격인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구두닦이 김상대(金相大·43)씨는 악착같이 저축을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자신도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빤한 살림살이에 진학은 엄두도 못냈다.

18살 때 경북 문경 집을 나와 무작정 상경,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내린 곳이 명동. 제화점이 즐비했다. 이렇게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4년쯤인가 명동에서 일하다 광주로 옮겼다. 80년 직장의 경영이 악화되는 바람에 실직의 아픔도 맛봤다. 제일은행 광주지점 직원의 도움으로 81년부터 은행 옆에 우산을 쳐놓고 구두닦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도 2명을 거느린 ‘제일구두방’의 사장님이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날 번 돈은 반드시 당일 은행에 입금한다. “제일은행과는 한 식구가 됐어요. 제일은행이 우량한 지, 부실한 지는 알 필요도 없었어요. 외부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는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은행 회식이 있을 때도 절 불러주지요.”

용돈은 84년 결혼한 이후 아내에게서 타 쓰지만 한 번에 5만원 이상을 손에 쥐어본 일이 없다. 돈을 쓸 시간도 없다.

“결혼식을 올릴 때 한 벌, 이번에 큰 상을 탄다고 한 벌, 양복이 모두 두 벌입니다.”

‘10원을 벌면 9원을 저축한다’는 정신으로 돈을 모아 올 연말 입주예정인 1억3000만원짜리 아파트(37평형)에 중도금 8000만원을 내고도 통장에 8000만원이 쌓였다.

“아이들(고3, 고1)에게 항상 ‘병원에 가봐라. 돈없으면 죽는다’라고 말합니다. 덕분에 막내인 딸은 저보고 짜디 짠 구두쇠라는 뜻으로 ‘○○소금’이라고 부르더군요.”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게가 있는 은행 4층에도 증권사가 있고 주식투자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암보험과 우체국 통장 하나 갖고 있는 것을 빼곤 모두 은행거래다.

수입을 묻자 “가게 위치(광주의 번화가인 충장로 3가)가 좋아서 ‘좀’ 법니다. 하지만 구두닦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선 밥 대신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많은데…”라며 끝내 대답을 거부했다.

그동안 단칸 셋방에 살면서도 먹여주고 재워주며 구두수선 기술을 가르쳐 독립시킨 ‘제자’들만 10여명. 이들에게도 항상 저축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93년부터는 광주 서동 ‘무의탁노인 사랑의식당’에 월 5만원, 직업학교(고아원)에 월 2만원씩 기부도 하고 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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