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게이트]금감원, 불법대출 열달간 "쉬쉬"

  • 입력 2000년 10월 29일 18시 56분


“12일 동방금고 노조의 제보를 받고 14일 전격적으로 동방금고에 대해 특별검사를 실시할 때까지 동방금고의 불법대출 사건을 알지 못했다.”(금감원 김중회(金仲會) 비은행검사1국장이 21일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을 발표하면서)

“이수원 대신금고 전무(현 사장)에 대한 징계를 ‘면직’에서 ‘정직2개월’로 낮춘 것은 장래찬(張來燦) 국장이 주도적으로 한 것이다.”(지난해 12월 대주주에 대한 불법대출 사고의 징계가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에 대한 김국장 및 금감원 임원들의 브리핑)

“금감원이 동방금고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10월14일 특검에 나간 때 처음 알았다. 장국장 사항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동방금고 노조가 제보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이근영 금감위원장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이 터지자 금감원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잠적중인 장래찬 전국장이 혼자 주도한 것이어서 금감원 전체조직과는 관련이 없는 ‘개인비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금감원의 주장과 진실〓금감원이 조재환(趙在煥)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들은 금감원 직원들이 14일 이전부터 동방금고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금감원은 8월 확정한 ‘2000년 하반기 검사대상’에 동방금고를 포함시켰다. 2월에 만들어진 ‘2000년 상반기 검사대상’에도 동방이 포함됐다가 장국장 지시로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동방금고에서 거액의 신용 및 주식담보대출이 발견됐으며 여수신 금액이 급증하는 등 이상징후가 있었음을 적어도 신용금고 담당직원들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3월 이수원 대신금고 전무에 대한 징계가 면직에서 정직2개월로 낮춰진 것도 장국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장국장이 분쟁조정국장으로 옮긴 뒤 금감원 간부 9명으로 구성된 심의제재위원회(위원장 김종창 부원장)에서 결정됐다. 당시 실무국장은 김중회 국장이었다. 게다가 금감원은 대신금고에 대한 경영지도기간 단축과 경영개선계획 제출 유예 등 대신금고와 관련된 중요사항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사건처리 과정〓금감원은 이번 사건발표를 항상 ‘뒷북치기’로 일관됐다. 21일 발표는 정현준 사장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모 전문경제지에서 폭로하겠다고 나서자 서둘러 이뤄졌다. 또 지난해 12월 대신금고에 대한 특검에서 불법대출을 발견한 검사팀(팀장 오세웅 선임검사역)이 동방금고에 대해 특검을 건의했다는 사실이 묵살됐다는 사실도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야 마지못해 시인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역인 이경자(李京子) 동방금고 부회장에 대해선 아무런 조사도 벌이지 않다가, 이 부회장이 검찰에 자진출두한 뒤에야 관련사실을 인정했다. 해외도피중인 유조웅(柳照雄) 동방금고 사장과 잠적중인 장 전 국장에 대해서도 검사과정에서 밝혀진 것을 먼저 발표한 경우는 없었다.

▽금감원 자체 조사는 기대난〓금감원은 사건이 드러난 이후 금고업무를 담당했거나 하고 있는 전현직 임직원 116명과 평창정보통신 주주명부에 똑같은 이름이 올라있는 123명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대신금고와 동방금고에 대한 검사업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당사자로, 지금까지 적극적인 실체규명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금감원이 이런 의혹을 제대로 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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