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주택은행장, "합병은 전격적으로"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08분


2차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재계와 금융권이 또다시 퇴출 합병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됐다. 그 중심에는 은행이 서있다. 은행권의 새판짜기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은행 및 관련 기업의 투자자에게도 큰 관심사다. 동아일보는 ‘CEO가 투자자에게’ 코너를 통해 9일부터 구조조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은행 수장(首長)들을 집중 인터뷰한다.<편집자>

“2년동안 공들였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성사시켰으니 이제 최선의 합병구도를 짜 은행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모으겠습니다.”

김정태(金正泰·53) 주택은행장. 국제통화기금(IMF)총회 참석차 지난달 말 체코 프라하로, 다시 뉴욕으로 날아가 NYSE 상장을 마무리짓고 6일 돌아온 그는 “미국증시 상장이 합병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단은 전혀 근거없다”고 일축했다.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이날 김포공항에서 바로 사무실로 출근한 그는 해외체류 기간중 감기를 얻었다며 연신 콧물을 훔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NYSE 상장 후 바로 합병을 추진하면 ‘상장시 기업의 중요경영전략을 숨겼다’는 이유로 소송당할 수도 있다던데…. 당분간 합병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장과 합병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만 주택은행은 지금까지 합병을 논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관계없습니다. 오히려 합병 전선에 ‘상장여부 불투명’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 한미은행 중 어느 쪽이 더 유망합니까?

“(한숨을 내쉬며) 유도심문하지 마세요. 은행합병은 정말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사실 이번 상장을 하면서도 국내 언론에서 자꾸 합병설을 보도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사람들이 ‘합병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수(sue·소송)하지 않느냐’고 묻던데 참….”

―그래도 내심 점찍어둔 곳이 있을 것 아닙니까?

“합병에서는 ‘주택은행의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게 핵심입니다. 일단 은행업종을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자문을 받겠습니다. 외국인 최대주주인 ING측의 의견도 물어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한 애널리스트에게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합병이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느냐’의 다른 표현으로 주주중시 경영에 철저한 외국 최고경영자(CEO)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고 답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장사꾼’으로 통하던 김행장이 NYSE 상장을 계기로 ‘국제적 장사꾼’으로 변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에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10월 중 우량은행 합병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다른 은행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택은행이 관련된 합병이라면 (10월중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또 설령 합병논의가 무르익었다 해도 미리 내비치거나 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NYSE 상장을 알리는 타종식이 끝난 뒤 관례대로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는데 갑자기 ‘무슨 무슨 은행이 합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모두들 그 쪽으로 달려가 우리 쪽은 김이 샜지요. 합병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전격적으로 해야돼요. 신문에 나면 될 일도 안됩니다.”

―지난달 20일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과 독대(獨對)한 게 은행합병과 관련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억측입니다. 나도 무척 바쁜 사람인데 한 시간을 기다리라더니 잠깐 만나고 말더군요. 시장상황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신 것밖에 없습니다.”

―진짜 합병이 필요하긴 한 건가요.

“은행이 너무 많아요. 우리보다 경제력이 10배이상 된다는 일본도 큰 은행은 3∼4군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른바 ‘오버뱅킹(over―banking)’ 상태지요.”

―NYSE 상장의 가장 큰 의미는 뭐라고 보십니까?

“한국의 금융주에 관심있는 외국인들이 뭘 사겠습니까. 당연히 대표 은행주인 주택은행이지요.”

―상장 후 국내에서 주택은행 주가가 크게 오르진 못했는데….

“금방이야 효과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주택은행의 재무자료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글로벌스탠더드’가 된 거지요. 앞으로 주택은행은 실적 등 확정되지 않은 숫자를 발표할 수도 없습니다. 잠정치가 사실과 다를 경우 국제소송을 당하니까요.”

김행장은 “부실기업 퇴출기준이 발표됐습니다”며 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신문 보고 알았다”며 이날 재경부장관―은행장 워크숍이 열리는 용인으로 서둘러 떠났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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