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들, 기업 퇴출 놓고 이해따라 첨예 대립

  • 입력 2000년 10월 6일 18시 37분


기업퇴출의 기준이 정해졌지만 시중은행들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퇴출기업의 선정에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업에 대해 담보를 확보하고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은 은행들은 기업퇴출에 좀더 적극적인 반면 준비가 덜 된 은행들은 회생시키는 쪽을 선호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곳이 현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중인 동아건설. 동아건설은 운영자금난으로 4807억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채권단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채권단은 다음주 중 협의회를 열어 신규자금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워크아웃 주관은행인 서울은행 관계자는 “자금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음주 중 열리는 협의회에서 신규자금지원이 결정되지 않으면 사실상 퇴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아건설의 처리와 관련해 채권은행들간에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동아건설 총여신 3조8000억원 중 4656억원의 여신을 갖고 있는 서울은행은 동아건설에 대해 47%의 대손충당금을 쌓아놓은 상태. 또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발생한 손실은 최근 정부에 요청한 1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에 이미 반영해 놓은 상태다.

서울은행 관계자는 “단순하게 보면 청산하더라도 큰 손실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 한빛 등 공적자금 요청은행들은 아무래도 회생보다는 퇴출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 채권단 내부의 반응이다.

반면 독자생존을 선언한 외환은행은 5085억원의 최대 여신을 갖고 있지만 대손충당금 적립은 20%에 불과해 퇴출시 추가손실 발생이 불가피하다. 외환은행은 동아건설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등 워크아웃 플랜을 통해 회생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동아건설이 금감위가 발표한 퇴출기준에 모두 부합되지만 신규자금 지원만 이뤄지면 충분히 회생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공적자금 요청 은행들이 회생 노력은 게을리한 채 공적자금에 의지해 퇴출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돼 설득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살려주는 채권은행에 책임을 물을 뿐만 아니라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무조건 퇴출시키려는 은행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채권단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은행간의 판단의 잣대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기업 실사를 거치지 않고 기업에서 보내주는 자료만을 갖고 회생 가능성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며 “동아건설뿐만 아니라 퇴출조건에 부합되는 상당수의 기업을 두고 채권은행간의 상당한 이견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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