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합의 '공염불'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36분


정부와 재계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준조세 감축 등 경제개혁 과제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9월말까지 확정짓기로 했지만 양측의 성의부족과 준비소홀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제장관들과 경제단체장들이 정재계 간담회를 통해 국민과 시장앞에 약속한 사항이 시한을 지키지 못한 채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정부와 재계는 진념(陳稔) 경제팀 출범 직후인 8월21일 간담회를 갖고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4개항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합의내용은 경제단체들이 9월말까지 △규제개혁 △준조세 폐지 △부품산업 육성 등에 대한 재계차원의 건의안을 내면 정부가 이를 정책수립에 적극 반영한다는 것. 이와 함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기업구조조정 5대원칙의 이행상황을 자율적으로 점검하고 향후 추진일정을 제출하면 정부가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검토해 보완사항에 대한 지침을 보내기로 했다.

양측은 재계의 초안이 마련되는대로 9월말 또는10월초에 2차 정재계 간담회를 열어 후속조치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한이 지났지만 4일 현재 재계 차원의 대책은 정부에 제출되지 않았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추석 연휴가 끼어있어 시일이 촉박한데다 일부 기업이 구조조정 점검실적을 제때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차질이 빚어졌다”며 “가능한 한 다음주초까지는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또다른 관계자는 “준조세 폐지와 규제완화는 재계가 몇 년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이어서 이번에 새삼스럽게 건의안을 내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라며 “정부측에서도 시한준수를 독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식언사태는 합의 일정을 면밀히 챙기지 않은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재계의 건의를 정책에 반영할 책임이 있는 경제단체의 과실이 더 크다는게 재계의 중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가 평소 목소리만 높였을 뿐 정작 ‘멍석’을 깔아주니까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서는 구태가 되풀이됐다”며 “정부와 재계 모두 떠들썩하게 모여 발표하는데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좀더 내실을 다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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