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보고서]"향후 6개월∼1년이 마지막 기회"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01분


“앞으로 6개월∼1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다. 이 기간동안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개발원(KDI)은 13일 경기전망 보고서에서 자못 비장한 어조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권위있는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해온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보고서의 경고 수위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

이는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의 현실 인식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장관은 요즘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꺼리는 금융기관을 겨냥한 발언이지만 경기가 나빠지기 전에 서둘러 구조개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초조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

무엇보다 한때 경기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던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올들어 부쩍 둔화되고 있는 점이 정부와 KDI의 공통된 걱정거리다.

▽경기정점 벌써 지났나〓각종 경기지표를 종합할 때 1·4분기(1∼3월) 이후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상승 속도의 둔화폭이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 전분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작년 2·4분기의 4.1%에서 올 1·4분기 1.8%로 낮아진 가운데 경기선행지표가 올들어 5개월 연속 하락했다.

KDI는 단정짓기는 무리지만 경기 곡선이 98년 2·4분기에 바닥을 친 뒤 올 1·4분기를 고비로 다시 하강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징후가 엿보인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최근의 경기상승 국면은 지속기간이 1년6개월에 불과해 과거 평균 인 2년6개월보다 1년이나 단축되는 셈. 김준일 KDI연구위원은 “금융불안과 이에 따른 신용경색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킨 탓이 크다”면서 “금융과 기업부문의 부실이 조속히 제거되지 않는 한 경기상승 기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이제 겨우 몸을 추스르는 단계에 들어선 상태에서 경기가 다시 나빠진다면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강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정부가 염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금융―기업부실의 연결고리 끊어야〓최근의 신용경색 현상은 기업의 과다부채와 금융기관의 부실이 맞물려 나타났다는게 KDI의 분석.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거나 반복될 경우 이는 기업의 매출 및 수익감소→부채 상환능력 저하→기업신용위험 증대 등의 악순환을 통해 금융부실과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진다.

해법은 금융과 기업부문이 부실을 상대방에 ‘핑퐁식’으로 넘기는 과정을 통해 부실을 확대재생산하는 연결고리를 끊는데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 김연구위원은 “금융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기업의 부채감축과 경쟁력 강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전체 부채규모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거의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조정 성과없이 자금지원만을 늘리는 식의 처방으로는 시장불안을 치유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시간 많지 않다〓이진순 KDI원장은 심지어 구조개혁을 마무리짓지 못할 경우 내년 이후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면 구조조정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고 이는 개혁의 포기로 이어져 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는 것.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좋으면 유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개혁을 꺼리는 경향이 더욱 커지게 마련”이라며 “지금처럼 경기둔화 기미가 보일 때는 오히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할 절박감이 생기기 때문에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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