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경제 균형발전'이란]남북 함께 잘사는 길로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8분


남북정상이 경제분야에 대해 합의한 내용의 골자는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

고심 끝에 내놓은 발표문이지만 용어 자체가 포괄적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남북 양측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앞으로 경협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개념을 명실상부한 한민족 경제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과도기적 전단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협을 통해 통일의 물꼬를 트되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임을 감안해 경협의 속도와 폭을 조절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접근법이라는 것.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북경협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는 상태에서 ‘균형적 발전’에 매달리다 보면 자칫 남북경제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본질은 남한의 대북한 지원〓삼성경제연구소 김연철 수석연구원은 “남북경제가 균형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남한이 북한의 경제재건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다만 북한이 일방적으로 지원받는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양측이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용어를 절묘하게 선택했다는 설명.

지금 당장 경협의 범위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것은 북한의 수용능력과 남한의 투자능력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는 만큼 손쉬운 분야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경협 규모를 늘려가자는 합의로 풀이된다. 우선 남북경협을 본궤도에 올려놓아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에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국제금융계의 자금지원을 이끌어내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합의의 정신이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채택된 경제교류 및 협력원칙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 당시 남북은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해 △자원의 공동개발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에 나서며 남북간 교역을 민족내부 거래로 발전시키기 위해 관세를 물리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무관세 교역이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남북경협이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북 모두에 이익〓이번 발표는 북한이 남한의 경제지원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대외개방 의지를 재천명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남한 경제력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남북이 서로 잘살기 위해(균형발전)’ 협력하는데 동의했다는 것.

한국은행 김주현 북한경제팀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경협을 통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도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챙겨가는 만큼 동등한 입장이라는 점을 알리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경협의 문호를 활짝 열어 남한의 도움을 받아들일테니 남측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익을 실현하라는 메시지라는 것.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 자원을 결합하는 사업이 대표적인 협력모델로 꼽힌다. 남한은 신발 가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북한으로 이전,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확보해 경쟁력을 높이고 북한은 에너지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유치해 경제재건의 기틀을 마련하는 식의 맞거래가 가능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일동연구위원은 “남북간의 경제력 차를 인정해 인도적 지원 성격의 경협과 ‘준대로 받는’ 식의 경협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를 재건, 결과적으로 통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는 개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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