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현대 해법 진통]정몽헌회장 돌연 일본行?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현대는 지난주 말 건설의 자금난이 표면화된 이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주거래은행이 구제금융을 해주는 대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 구조조정이 미진한 것으로 인식되면 31일 금융시장에서 대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은행이 요구하는 지분매각과 가신그룹 퇴진 등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그룹 운영에 타격이 올 수도 있어 그 사이에서 묘안을 짜내느라 진통을 거듭.

이런 상황에서 정몽헌(鄭夢憲)회장이 27일 아무런 통보도 없이 돌연 출국해 관심을 끌고있다. 재계는 정회장이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 사장과 동행한 것으로 볼 때 현대건설의 자금난을 덜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출국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될 대북 특수사업에 일본의 자금을 끌어들이거나 경인운하건설 등 한국의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파트너를 찾기 위한 방일이라는 것. 4월초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 등 회장단이 일본 경단련 관계자를 만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 프로젝트가 실현단계에 와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 일부에서는 대북사업이나 한국의 SOC사업에 일본자본의 참여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현대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우량자산 매각을 위해 방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본측의 가혹한 조건 제시로 난항에 빠져있는 현대석유화학 매각협상을 현대측이 조건을 완화시켜 협상을 재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과 재계의 관심도 ‘정회장이 일본 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지, 또 어떤 방법으로 자금을 끌어올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방일이 정부와의 싸움에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외자도입이 하루 이틀 만에 성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 만큼 이번 정회장의 급작스러운 출국은 단순한 시간끌기용이라는 것이다.

한편 현대구조조정본부와 현대건설측은 토요일(27일)과 일요일(28일)에도 전원 출근해 자구계획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밀려오는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막기 위한 악전고투의 상황은 아니지만 정부와 외환은행측이 요구에 따른 자구안을 마련하느라 온종일 부산한 움직임이었다.

현대 직원들은 3월 중순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현대투신사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대형사건을 겪으면서 ‘만성적인 긴장상태’로 지내와 웬만한 충격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현대측이 내부적으로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익치(李益治)회장의 퇴진 문제와 우량자산 매각인 것으로 보인다. “정회장이 정몽헌 회장 체제 옹립의 최대 공신인 이회장의 용퇴를 권유하기는 어렵고 시간에 쫓겨 우량 자산을 헐값에 매각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현대 관계자의 말이 이런 상황을 설명해준다.

현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28일 오후 상황을 “핵심 인사들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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