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 정면 충돌…기업개혁방법론 놓고 대립 심화

  • 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재벌에 대한 주식이동 세무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재계가 그룹별 구조조정본부에 과징금을 부과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자 정부가 이 기구의 조속한 해체를 거듭 촉구하는 등 정부와 재계가 정면 충돌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가 21일 세무조사 대상을 4대 재벌에서 다른 그룹으로 확대할 방침을 밝히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의 기업개혁에 대한 문제제기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업개혁 방법론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의견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재벌 구조조정본부는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기구인 만큼 인사나 자금배정 등 기존의 기조실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기업들은 이제 시장에서 정해진 규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대재벌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 “경기상황 때문에 미뤄오던 정기조사를 기업 규모가 큰 순서대로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해 세무조사 대상을 중견그룹으로까지 확대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장관은 이날 저녁 열린 한국능률협회 주최 ‘한국의 경영자상’ 시상식 치사에서도 “변화를 거부하고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기업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며 기업의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달 안에 부당내부거래 혐의가 짙은 기업을 선정, 다음달부터 30대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대기업에서 분사한 기업과 모기업간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다.

정부의 공세가 거세지자 전경련은 정부의 압박에 논리적으로 대응키로 하는 한편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경제심리를 위축시킬 소지가 큰 점을 들어 공식적으로 재고를 요구키로 했다. 또 삼성 현대 등 주요 그룹들은 이날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정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재계는 그동안 인력감축과 자산매각, 핵심역량 집중 등 정부 정책에 충실히 협조해왔다”면서 “시민사회에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는 만큼 재계도 필요한 정책을 계속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의 지배구조모범규준 이행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한편 채권금융기관을 통한 금융감독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어서 정부와 재계의 난기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임규진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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