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1人총수체제 종식…경영자協-그룹구조조정본부 해체

  • 입력 2000년 3월 30일 07시 01분


현대그룹은 족벌경영 등 전근대적 경영의 수단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경영자협의회와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최소한 외형상으로는 1인 총수체제로부터 개별 계열사중심의 경영체제로 바뀌게 돼 다른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고위관계자는 29일 “최근 후계구도를 둘러싼 내분과정에서 경영자협의회와 구조조정본부가 법적인 기구도 아니면서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는 등 월권행위를 하고 그룹총수가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짐에 따라 현재 경영전략팀에서 개선작업을 진행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경영자협의회를 해체하고 정몽헌(鄭夢憲) 회장은 전자나 건설 등 주력 계열사의 회장을 맡고 나머지 계열사는 정회장이 신임하는 전문경영인이 책임경영을 하는 형태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룹 각 계열사의 중요사항을 결정하던 계열사 사장단모임인 경영자협의회가 해체되고 각 계열사가 명실상부하게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

현대그룹의 이같은 방침은 정부의 강도 높은 압력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밖으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강한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는 또 이번 내분과정에서 사실상 과거 재벌의 비서실과 종합기획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룹 구조조정본부도 해체할 계획이다.

정몽헌 회장은 빠르면 이번 주말이전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개선방침을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만약 이같은 안을 실천한다면 총수가 비서실 및 종합기획실과 사장단 회의를 통해 각 계열사를 통제하던 과거 재벌식 경영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

현대 관계자는 “현재 그룹측은 경영자협의회를 없앨 경우 신산업진출결정 등 범 계열사차원의 업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정부가 요구하는 구조조정본부의 본래기능인 그룹의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공정거래법상 대주주와 계열사의 상호출자 한도를 관리하는 팀을 어디에 둘 것인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본부의 경우 정부가 요구하는 기능만을 가진 부서로 축소시켜 핵심계열사로 옮기거나 해체시한을 약속한 뒤 당분간 구조조정본부를 존치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는 법적 권한이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이라는 제한된 기능을 하는 조직과 협의기능만 갖는 경영자협의회가 과거 재벌비서실처럼 경영과 인사에 직접 간여하는 것은 국민과 정부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라고 현대를 강하게 비판,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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