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그정열 벤처서 빛 본다…시위전력 사장 성공비결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소위 3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인터넷 벤처 업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 이면에는 시위 전력 등으로 일반 기업에 취직할 기회를 빼앗기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인터넷’이라는 신천지를 선점한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시대를 변혁하려 한 열정과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는 개방된 마인드, 인간 중심의 네트워크가 필수인 ‘운동권’적 사고방식이 ‘벤처 정신’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시대 상황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운동권’식 경영 노하우는 무엇일까.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 문화, 수평적 네트워크〓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의 이비즈홀딩스주 고명석사장(38). 건설업계와 정치판을 돌다가 96년 인터넷 비즈니스에 뛰어든 그는 기업 경영에 운동권 시절 몸으로 익힌 비판과 토론, 수평적 네트워크 문화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에서부터 코스닥 등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원하는 벤처 인큐베이팅 업체인 이 회사는 직원들 모두가 직위 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토론과 분석을 통해 인큐베이팅할 업체를 선정한다. 특히 운동권 시절,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전략을 구상하던 ‘정세 분석’ 경험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인터넷시장을 분석하고 신기술을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인천 5·3사태 당시 수배됐다가 안기부에서 80여일간 감금된 경험이 있는 주인터넷빅뱅 황혁주사장(37)은 “운동권 출신 사장 대부분은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며 “직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기업을 만들자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수평적 네트워크와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치지 않는 정열과 휴먼 네트워크〓인터넷 소프트웨어 업체인 영산정보통신주 곽동욱사장(38)은 사내 동아리를 적극 지원해준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그는 ‘기업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동아리 활동에 대한 물적 시간적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던 A사 J모 사장은 이사를 선임하면서 후보를 미리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직원들의 투표를 거쳐 선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장이 지명하는 것보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면 조직의 결속력을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

특히 운동권 시절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열정’은 여느 벤처기업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무기이다. 이비즈홀딩스 고사장은 “일주일에 서너차례 밤을 새워 일하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열정이 없다면 버틸 수 없는 조직”이라며 “목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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