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株테크' 정당성 논란…고위직 주식투자 구설수

  • 입력 2000년 2월 29일 19시 10분


‘정당한 재테크인가 직무상 기밀을 이용한 개인적 치부인가.’

고위공직자의 지난해 재산변동내용 공개 결과 장차관을 비롯한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 중 상당수가 본인과 부인 자녀 명의로 주식에 투자해 재산을 크게 불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직자 주식투자’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공직자들은 “여유 돈을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굴리는 것은 기본적 권리”라며 법을 어긴 사실이 없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는 “주식투자의 위법성 여부를 떠나 현직에 재직하는 동안은 주식에 손대지 않는 게 공직자로서 바람직한 처신일 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장차관이 모두 주식에 투자해 재미를 본 것으로 나타난 기획예산처는 매우 곤혹스러운 분위기. 진념(陳稔)장관은 부인이 LG정보통신 동부화재 등에 투자해 약 2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최종찬(崔鍾璨)차관은 본인 부인 아들 명의로 한아시스템 등 벤처기업 주식을 상당량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장관은 “공모주 청약으로 갖고 있던 주식을 작년 여름에 처분하면서 매각대금으로 주식을 샀는데 공교롭게도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고 최차관은 “박현주펀드 등 주로 간접투자 상품을 이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주변에서 흔쾌히 납득하지 않자 속만 끓이는 모습.

경제부처 중에서도 정보통신 및 벤처기업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의 전현직 고위공직자들이 주식투자로 재미를 본 것도 주목거리다.

총선출마를 위해 사임한 남궁석(南宮晳) 전 정보통신부장관은 삼성전기, 김동선(金東善)정통부차관은 한국통신과 텔슨전자 주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렸고 오영교(吳盈敎) 산자부차관 등도 포항제철 삼성SDI 등의 주식에 투자했다.

공직자들의 이같은 재테크 실력을 지켜보는 시민단체와 소액투자자의 시선은 싸늘하다. IMF 구조조정 여파로 직장을 잃고 전업투자자로 나선 시민 황모씨는 “장관들에게 과외지도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꼬집었다.

조석준(趙錫俊)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개발정보를 먼저 입수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과 같다”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는 공직자의 주식투자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투신운용사의 중견간부는 “경제부처의 국장이나 주요 과장 가운데 벤처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인허가와 관련해 주식을 헐값에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여의도 증권업계에는 “작년에 아무리 주가가 올랐더라도 고위 공직자들이 거둔 수익률은 대단한 것”이라며 이들을 펀드매니저로 영입하자는 말까지 나돈다.

<박원재·이진영기자> parkwj@donga.com

▼법적으론 문제없나▼

경제 관련 부처의 고위공직자가 주식투자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증권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금융감독위원회 등 증권감독기관 임직원과 증권회사 임직원은 증권저축을 통한 주식투자만 허용되고 직접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는 엄격히 규제된다.

그 외 공무원들은 경제관련 부처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내부자거래에만 해당되지 않으면 제한 없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부자거래의 범위도 상당히 포괄적이다. 증권거래법 제188조 2항(미공개 정보 이용행위의 금지)은 해당 회사의 임직원 주요주주와 해당 회사에 대해 인허가 지도 감독 등의 권한을 가진 자, 해당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자 등으로 내부자거래 유형을 규정하고 있다.

증권전문가들은 “증권거래법에서 정한 미공개 정보는 주로 해당 기업과 관련된 정보로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 사항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증권거래소 국제업무실 이덕윤과장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증권 유관기관 임직원과 경제부처 관리에 대해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법적 조항은 없다”며 “다만 내규나 사규를 통해 주식투자를 일정부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보유주식 규모와 매매로 인한 지분변동시 회사에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거나 △주식매수 후 6개월 이내의 매도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주식투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정부의 주요한 정책사항이 주식시장 및 관련종목 주가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며 경제부처 관련 공무원들이 정책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주식투자를 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때문에 증권전문가들은“법적으로 하자가 없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게 좋다”며 “경제관련 부처의 임직원들도 ‘미공개 정보 이용금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따져볼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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