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역수지 적자행진 대응책없어 고민

  • 입력 2000년 2월 27일 19시 21분


무역수지 적자가 올해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교란할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1월중 4억달러의 적자를 내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27개월 만에 일단락됐을 때만 해도 “연초에 흔히 있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느긋해 했던 정부 관계자들은 2월 들어서도 적자행진이 계속되자 수출대책을 재점검하는 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

물가안정을 중시해온 올해 정부의 경제운용 원칙도 차츰 경상수지 관리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 26일의 제2차 거시경제종합점검회의에서 정부는 “물가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거시경제정책을 펴나가되 경상수지 흑자 관리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이처럼 입장수정에 나선 것은 대외 수출여건이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 국제유가 인상과 일본 엔화의 약세에다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가뜩이나 고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전망이 극도로 불투명해지고 있다.

여전히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 체질상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대외균형이 무너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의 연쇄이탈을 촉발해 또 한번의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정부 내에도 잠재해 있다.

문제는 무역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뾰족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 거시경제점검회의의 결론도 경상수지 흑자관리에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에 나선다는 원칙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무역수지 적자의 내용이 좋지 않은 점도 부담. 수출과 수입이 모두 작년보다 늘고 있지만 고급소비재와 정보통신 등 일부 호황분야의 자본재 수입이 급증하면서 수입 증가율(50.3%)이 수출(30.6%)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 들어 외환당국이 원화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은 무역수지에 긍정적 효과가 미치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지만 이 같은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물가안정 기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율을 시장수급에 맡겨 원화강세를 감수하자니 무역수지가 부담이 되고 원화약세를 용인하자니 물가에 미칠 악영향이 걱정되는 상황이라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저물가, 고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경제팀의 야심찬 목표가 바야흐로 중요한 실험대에 올랐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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