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과학영재 '수혈'…KAIST 벤처실습 학점제 도입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33분


‘학점을 따려거든 벤처기업으로 가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벤처기업 실습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벤처 학점제’를 도입키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KAIST와 한국벤처협회(회장 이민화)는 23일 이 협회 소속 900여개 벤처기업에 KAIST 재학생이 일정기간 실습할 수 있도록 하고 KAIST는 이를 학점으로 인정토록 하는 내용의 산학업무협력계약을 29일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민화회장은 “벤처기업의 생명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라며 “KAIST의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를 벤처기업에 투입, 한창 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벤처 학점제가 대학생의 벤처열기를 발산하고 벤처기업의 고급인력 ‘갈증’을 해소하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벤처기업들은 창업자의 기술과 노하우로 1단계 성공을 거두었지만 ‘추가 도약’을 위한 기술개발에 상당수가 실패, 한계에 부닥쳐 있다.

특히 벤처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의 기술 사이클(cycle)이 6개월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새로운 첨단 전문인력 확보는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 벤처 학점제는 종전의 ‘졸업학점제’와는 전혀 다르게 운용된다.

KAIST 관계자는 “기존 산업체 실습 졸업학점제는 논문과 산업체 실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번 벤처 학점제는 졸업과 무관하게 3, 4학년생이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ST는 올해 안에 우선 전기 및 전자공학전공과 등 공학부를 중심으로 이 제도를 적용하고 내년부터 모든 학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KAIST는 국내의 대표 벤처기업가를 배출한 사실상의 ‘벤처 사관학교’. 이 학교 출신들이 이끌고 있는 메디슨(이민화회장) 핸디소프트(안영경사장) 새롬기술(오상수사장) 터보테크(장흥순사장) 등 4대 기업의 주가총액은 이미 6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KAIST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150여명의 벤처기업인들이 각 분야에서 약진, 최근의 벤처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벤처 학점제’는 미국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의 산학협동 모델을 적극 응용한 것.

스탠퍼드대는 재학생과 교수 대학당국이 삼위일체가 돼 벤처창업을 적극 장려해 대학이 사실상 ‘벤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학계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 “과학영재를 배출해야 할 KAIST가 재학생에게 지나치게 벤처기업에 대한 기대감을 강조하는 것은 인재의 편중현상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최수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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