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후순위債 봇물… 增資대신 선호 부유층에 인기

  • 입력 2000년 1월 14일 18시 50분


최근 은행들이 자본을 늘리는 수단으로 절차가 까다로운 증자 대신 후순위채 발행을 선호하면서 후순위채 금리가 주가 못지않게 은행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핵심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후순위채는 말 그대로 은행이 발행한 채권중 변제 우선순위가 가장 뒤지는 무보증 채권. 극단적으로 은행이 망하기라도 하면 주식과 마찬가지로 떼일 각오를 해야 하므로 발행금리에는 시장의 평가가 그대로 반영돼 있는 셈.

▽후순위채 대유행〓하나은행은 작년말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본점과 주요지점 창구에서 개인 고객에게 연 10.5%의 금리로 판매했다. 투자 위험도가 높은 후순위채를 개인에게 판매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신청금액이 예정물량을 17억원 초과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나은행은 이에 따라 이달중 후순위채 1000억원어치를 추가 판매하는 등 올해안에 모두 4000억원 규모를 발행하기로 했다.

외환은행과 농협도 비슷한 시기에 각각 2000억원과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외환은행과 농협의 경우 보험 종금 등 기관이 대부분의 물량을 인수한 반면 하나은행은 은행 신용도를 내세워 여유 돈이 풍부한 개인을 공략한 게 특징.

김승유(金勝猷)하나은행장은 “적어도 앞으로 5년간은 우리 은행의 전망이 밝다는 점을 개인투자자들이 인정해준 셈”이라고 흐뭇해했다.

우량은행으로 꼽히는 신한은행도 조만간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주가가 낮은 한빛은행은 다음달안에 해외투자자들을 상대로 10억달러 규모의 외화 후순위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에 얽매이지 않고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후순위채 발행을 장려하고 있다.

▽재테크 수단으로도 유용〓후순위채는 일반 채권에 비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은행 예금보다 금리가 2∼3%포인트 높게 책정된다. 좋게 보면 은행의 공신력과 고수익이 가미된 금융상품인 셈.

최저 매입한도는 1000만원으로 평소 굴리는 돈이 많은 부유층 고객이 후순위채를 선호하는 추세.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자가 연 7∼8%대에 불과한 예금상품으로는 다른 금융권과의 금리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 고소득층에 적합한 고수익 상품을 개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며 “1인당 평균 매입액은 2억원선”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후순위채 발행에 경쟁적으로 나설 경우 금리가 좀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유리한 요인. 은행 관계자들은 그러나 후순위채는 △변제 순위가 늦고 △주식과 달리 현금화가 쉽지 않으며 △다른 은행상품처럼 중도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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