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50%이상 의무화' 내년 시행… 정재계 논란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8시 26분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 50%이상 의무화’를 확정함에 따라 사외이사의 수급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재계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600∼700명의 사외이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이미 각종 경제단체에서 1000명 이상의 사외이사 인력풀을 갖추고 있어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외이사 선임자격에 대해서도 재계는 선임요건 완화를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현재 요건으로도 얼마든지 적합한 사외이사를 구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내년까지 700여명 뽑아야

▽사외이사 수요 얼마나 되나〓정부방침에 따르면 자산규모 2조원이 넘는 증권사, 보험사 등 48개사가 당장 내년부터 이사회의 절반(최소 3명)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2001년부터는 자산규모 1조원이 넘는 139개 상장기업 역시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는 상황.

50명 가량의 사외이사를 확보하고 있는 제2금융권의 경우 내년초까지 150명 안팎의 사외이사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이미 적임자를 찾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내년말까지는 500∼600명 가량의 추가적인 사외이사 ‘수혈’이 필요해 ‘적임자’를 찾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 질 전망이다.

▽사외이사 수급의 문제점〓금융감독위원회가 636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현황(8월말 현재)을 조사한 결과 대학교수가 19.6%로 가장 많았고 변호사(11.5%) 언론인(4.4%) 전직공무원(2.8%)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는 거의 없는 실정.

◇상당수 인사 겸임 가능성

재계는 이에 대해 “기업운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인사에게 어떻게 회사의 주요의사 결정과 감시활동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다. 사외이사를 맡을 만한 사람이 제한돼 있어 상당수는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를 독식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측은 이같은 재계주장에 대해 “개혁을 회피하려는 억지”라고 일축한다.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에 참가한 정부인사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의 등 상당수의 경제단체가 사외이사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력풀을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사외이사 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총 고급인력센터는 사외이사를 맡을 수 있는 인력을 300명 정도 확보하고 있으며 대한상의와 상장사협의회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1000여명의 사외이사 지망후보가 배출됐다. 하지만 재계는 ‘쓸만한 인재’가 별로 없다는 입장.

◇"실제 경영감독 한계" 지적

▽사외이사 무력화론〓경제전문가들은 정부방침대로 사외이사를 늘려도 사외이사가 당초 목표한 경영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포함해 이사회 자체가 오너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새로 뽑는 사외이사도 결국 ‘친(親)오너’성향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 실제 경영감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소 한상완(韓相完)연구원은 “실무와 로비 등에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숫자만 늘린다고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사외이사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감시장치가 작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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