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재벌-反재벌論 '재벌의 존재이유' 20년논쟁

  • 입력 1999년 8월 19일 19시 11분


‘친재벌론’ 대 ‘반재벌론’.

70년대 이후 재벌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가 되면서 양측은 20여년간 공방을 벌여왔다.

당사자인 재계뿐만 아니라 학자 교수 등이 양 진영으로 나뉘어 재벌체제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치열한 논리 싸움을 전개했다.

97년말 환란의 주범으로 재벌이 도마 위에 오른 이후 양측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20년 대결〓70년대 중반까지 재벌 비판은 성역이었다. ‘재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자신이 재벌의 최대 후원자였기 때문.그러나 소수 재벌에 의한 과점체제가 국민경제에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비판론이 점차 고개를 들었다. ‘보릿고개’를 넘느라 미처 못보았던 ‘성장의 그늘’이 그만큼 짙어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재벌비판의 1세대는 변형윤(邊衡尹) 안병직(安秉直)서울대교수와 김대환(金大煥)인하대교수 등으로 대표된다.

이들이 뿌린 ‘씨’는 80년대 이후 무르익었다. 민주화운동 바람을 타고 개혁성향의 소장 학자들이 재벌의 폐해론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하나의 ‘학파’로 자리잡았다. 사회운동과의 결합은 이들의 힘을 더욱 키워줬다.

97년 환란이 터지자 재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등에 업은 70년대 비판론자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벌의 ‘자구책’〓60, 70년대 재벌은 ‘편한 시절’을 보냈다. 3공화국의 ‘하면 된다’는 돌격주의와 함께 재벌은 고속성장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면서 재벌은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산하에 재벌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 삼성 대우 등 주요그룹들이 민간연구소를 속속 설립했다.

93년 전경련회장에 고 최종현(崔鍾賢)SK회장이 취임하면서 재벌의 방어논리는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재벌정책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재벌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재벌은 생존을 위한 ‘자구’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최회장은 한경연의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예산을 늘렸다.자신의 모교인 시카고대에 유학시킨 소장 학자들은 이른바 ‘최종현 장학생’으로 불리면서 친재벌 노선을 전파하기도 했다. 최회장 자신이 적극적인 발언에 나섰다가 설화(舌禍)에 휘말리기도 했다.

전경련은 재작년 자유기업센터를 설립해 시장경제 이론 전파에 나섰다. 재벌체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

그러나 IMF사태이후 재벌은 전례없이 힘겨운 시기를 맞았다.

▽시장주의 주장은 똑같아〓친재벌론이든 반재벌론이든 기본적인 철학은 똑같다. 바로 모든 것을 시장 자율에 맡기자는 ‘시장주의’다.

그러나 현재 시장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느냐는 대목에서 둘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우리는 아직 진정한 시장경제를 가져보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인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정운찬 서울대교수).

이에 대해 재벌측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하면 시장은 문제 없이 잘 굴러간다”고 반박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의 재벌은 “주어진 경제환경에 의해 승자로 선택된 것”이다.

송병락 서울대교수는 “국제무대에서 외국 업체를 이기려면 그룹의 힘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공룡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입체전 양상〓양측의 대결은 논리 싸움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재벌측은 반재벌 입장에 선 학자들까지 우군으로 포섭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판론측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개혁파 소장학자들이 다양한 전술을 선보였다. 소액주주 운동 등 ‘전투적’인 이벤트는 국민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 주총에서 경영진을 물고 늘어진 장하성고려대교수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재벌 쪽의 ‘스타’로는 공병호자유기업센터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로 단단히 무장하고 TV에서 재벌측 입장을 과감히 옹호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부의 파상적 개혁 압박 속에서도 양측의 논쟁은 갈수록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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