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강세]화려한 지표 뒤엔 ‘거품두려움’

입력 1999-01-08 20:01수정 2009-09-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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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도 안하고 술담배에 절어 사는 남자가 비아그라를 먹은 것과 마찬가지죠.”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조만간 꺾일거야. 이젠 던져야지.”

요즘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말이다.

원화가치 주가 채권값이 동시에 상승하는 이른바 트리플강세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

8일 국책은행과 공기업들의 달러매입을 통한 시장개입으로 원화값이 다소 떨어지고 주가도 8일만에 하락세로 반전했지만 트리플강세 추세가 바뀐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관제(官製)경기〓최근 정부는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개입은 물론이고 경기부추기기를 주도해 ‘관제경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다가 금리라는 금융변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려서 만든 ‘금융경기’다.

3년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은 5%대로 떨어졌다. 투자부적격 신용등급 상태인 한국의 국채 금리가 세계 최고등급(AAA)을 받은 미국의 국채 금리 수준과 맞먹는다.

‘금리인하→기업의 투자촉발→경제성장’이라는 논리는 경제학원론에 나온다. 현실도 그럴까.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기업이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국채 금리는 1%대에서 0.5%대까지 떨어졌지만 실물경제는 얼어붙은 채 풀리지 않고 있다.

금융경제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금리를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은 돈을 쓸 기업이 없을 정도로 실물이 나쁘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해석한다. ‘기업투자와 개인소비는 침체돼 있는데 금리 환율 등 금융변수가 좋아졌다고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

▽거품이 생긴다〓실물과 연결되지 않는 정부의 금융완화 정책은 자칫 주식과 부동산시장만 띄우는 거품을 키울 수 있다. 지난해 12월 1∼14일 국내주가는 25.41%가 올라 상승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뉴욕 홍콩 도쿄 등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반대로 설비투자는 지난해 11월 작년동기대비 33.8%의 감소를 기록했다. 금리가 낮아졌지만 돈은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증시로 몰렸던 것.

돈을 봐도 그렇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행한 화폐는 15조9천억원. 97년보다 1조8천억원이 줄었다. 50년 한국은행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개인과 기업이 지출을 억제해 갈 곳없는 자금이 한은 창고에 잔뜩 쌓여 있다.

잠자는 실물 위로 돈이 넘치면 어떻게 되나.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는 “증시에 머물고 있는 돈이 하반기(7∼12월)쯤에는 각종 세제혜택이 주어지는 부동산시장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80년대 중반 무역흑자로 번 돈이 증시와 부동산으로 몰려가 거품으로 변했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

▽‘경기 띄우기’보다 급한 일〓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상무는 “금리인하보다는 금융기관 정상화를 통해 신용경색현상을 푸는 것이 급선무”라며 “기업들의 부채구조조정 일정이나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준수일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韓相春)연구위원은 “과거에도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적이 거의 없다”며 “정부는 단기적으로 생색내기에 몰두하지 말고 구조조정과 함께 규제완화 등 표 안나는 일에 치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전력의 손원길(孫元吉)국제자금부장은 “기계를 떼다 파는 식의 자본재 수출이 적지 않아 수출잠재력이 잠식되고 있다”며 “수출의 내실을 다지는 데 정부가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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