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부「소유-경영분리」발언 긴장

  • 입력 1998년 12월 15일 19시 09분


재벌의 소유구조와 관련, 정부의 강경방침이 잇달아 터져나오자 재계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채 그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의 발단은 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李憲宰)위원장의 13일밤 발언. 이위원장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앞으로는 5대 그룹의 대주주(오너)라고 하더라도 경영능력이 없다면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없을 것”이라며 소유 경영의 분리원칙을 분명하게 밝혔다.

재계에선 이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진의를 탐문하며 “그동안 재벌해체 수순을 밟아온 정부가 재벌총수의 경영권 박탈이란 마지막 칼을 빼들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재계는 7일 정재계간담회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문제를 언급한데 곧이어 이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점에 특히 주목하며 재벌정책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현정부의 재벌관〓김대통령은 취임식 직전 가진 ‘국민과의 대화’에서 “재벌총수들은 기업경영에 무한책임을 지고 잘못하면 퇴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엔 공식적인 석상에서 “재벌의 아들이라고 해서 손에 물한방울 안묻히고 기업을 대물림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재벌상속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일단을 비쳤다.

이어 7일 정재계 간담회에서는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이 경영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밝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김대통령뿐만 아니라 청와대 김태동(金泰東)정책수석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 금감위 이위원장 등 대통령의 경제브레인들은 한결같이 재벌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재벌개혁의 마지막 단계로 가족중심의 현행 재벌소유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영권 박탈에 대한 논란〓민간은 물론 국책경제연구소 전문가들까지 정부가 강압적으로 재벌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은 초법적인 권한남용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회사법에 있는 주식회사제도는 주주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며 “그러나 회사법에는 주주의 보유지분에 대한 권한을 박탈하는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자격’문제도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이며 지극히 계량화가 힘든 총수의 경영능력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자유기업센터 공병호(孔炳淏)소장은 “기업경영 경험이 없는 정부나 제삼자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경영능력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심각한 후유증 불가피〓만약 이위원장의 발언대로 정부가 나서서 소유와 경영을 강제 분리할 경우 경영권 공백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전문경영인이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한국현실에서 어떻게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총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결국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과 책임소재 등으로 경영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특정 재벌 총수의 경영능력을 문제삼아 경영권을 박탈할 경우 필연적으로 특혜 편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그룹이 독립적인 주력기업 중심체제로 전환되고 사외이사 비중 증가와 소액주주의 감시활동이 강화되면 총수의 독단적인 경영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재계에선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 아닌가”하며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이희성·김상철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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