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中企지원책]금융권, 담보-꺾기 요구 여전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22분


고금리에 경영 압박을 받는 수출기업인 A사는 최근 거래은행으로부터 ‘신용보증서 발급을 중단하고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상영업 때까지 회수를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B사는 거래은행이 퇴출당함에 따라 최근 인수은행에 저리의 정책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담보를 더 내고 대출관련 예금에 가입하라”고 종용받았다.

C사는 기존 신용대출이 만기돼 연장을 요청했다. C사가 거래하던 은행의 인수은행은 “대출심사기준 미달로 신용대출을 할 수 없으니 대출금의 140%에 해당하는 부동산 담보나 신용보증서를 내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내수기업인 D사는 예금(연 9%)과 대출(연 19%)금리 차이 때문에 고통받다가 예금과 대출을 서로 상계할 것을 거래은행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금융기관은 돈이 넘쳐 어디에 쓸지 몰라 고민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돈 구경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26일 “전체 중소기업의 90%가 이같은 금융애로를 겪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금융권에서 자금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수차례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마련해 은행권에 내려보냈다. 우선지원 및 조건부지원 대상으로 분류된 중소기업에 대해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여신을 일괄 연장해주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은행권의 만기연장 거부로 7∼9월에 만기가 도래한 여신 8조5천억원 중 11%인 1조원을 갚아야 했다.

정부의 대출실적 점검을 앞두고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가라”는 ‘요청’을 받은 한 중소기업은 30억원을 대출받은 뒤 똑같은 금리로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해야 했다. 정부 통계에만 대출실적이 늘어났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은행들은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와 수신금리를 크게 내렸으나 중소기업은 대출잔액의 6.2%에 불과한 2조7천억원의 대출에 대해서만 금리인하 혜택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은행권에선 “5대 그룹 외에는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기업이 없어 자금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구조조정기를 맞아 신분이 불안한 은행원들은 정부가 ‘우량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면책’을 약속해도 이를 믿지 않기 때문에 금고문을 열지 않는다.

〈김상철기자〉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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