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外이사 사내서 「새바람」…경영진 독주제동 「시어머니」

  • 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57분


‘사외이사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SK텔레콤의 사외이사들이 지난달 30일 재벌그룹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제동을 걸어 지원금 2천억원을 회수하자 재계에선 이렇게 첫 반응이 나왔다.

증권거래소 내규에 따라 올해 처음 등장한 사외이사제가 경영현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처럼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믿고 상정했던 안건이 사외이사의 깐깐한 이의제기로 보류되는가 하면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사외이사들이 당당하게 따지고 묻고 보충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경영진들이 쩔쩔매고 이사회시간이 3,4시간 걸리기 일쑤.

▼권한 막강해진 사외이사〓SK텔레콤 사외이사는 남상구씨(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김대식(金大植·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씨. 이들은 주요 대주주인 미국계 타이거펀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오히려 상근이사보다 권한이 더 막강하다는 평.

이들은 7월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SK텔레콤이 추진중이던 사옥이전문제를 보류시켰다. SK텔레콤은 현재의 남산사옥과 부동산을 매각한뒤 서울 종로구 서린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했으나 사외이사가 강력 반대, 끝내 무산됐다.

김씨는 이와 관련,“신사옥의 건물값이 현 사옥보다 2배가량 비쌀 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기가 바닥상태인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사옥과 부동산이 매각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류시켰다”고 설명했다.

▼시어머니 같은 사외이사〓현대자동차는 올들어 모두 4차례가량 이사회를 열고 핵심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7월중에 열린 이사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분규가 심각한 와중에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정리해고를 무조건 강행하겠다는 경영진에 제동을 걸어 상당부분 의견을 관철시켰다.

사외이사들은 정리해고의 규모를 좀더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정리해고 회피노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현대차가 정리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다며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것을 건의, 반영됐다.

LG그룹 계열사들은 대부분 사외이사의 참여로 이사회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평.특히 사외이사들이 송곳같은 질문공세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바람에 예전에 1시간이면 족했던 이사회가 3∼4시간씩 길어졌다.

LG생활건강 조명재(趙明載)사장은 “그룹내에서 가장 ‘두려운’사외이사는 현장과 이론에 밝은 장종현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지사장”이라며 “그의 질문이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날카로워 질문에 답하다 보면 진땀을 흘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재벌그룹중 현금흐름을 특히 중요시 하는 롯데그룹은 사외이사를 대부분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선임했다. 신격호(辛格浩)회장이 최근들어 부쩍 유동성확보와 자금관리를 중요시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강화됐다는 후문.

그룹 재무팀원들은 “사외이사들이 자금집행과 계획에 대해 너무 엄격해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비상장사인 평화은행의 사외이사는 지점장 평가에 깊숙이 참여한다.

GE코리아의 강석진(姜錫珍)사장 등 평화은행 사외이사들은 3월 점포장들에게 부실대출의 책임을 물을수 있는 평가안을 은행측에 만들도록 요청,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같은 일부 사외이사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아직도 미약하다는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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