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 타결/의미와 문제점]

  • 입력 1998년 9월 3일 19시 25분


5대그룹의 대타협을 통해 마련된 이번 사업구조 조정안은 당장 내수부문의 공급과잉을 완화하고 각 그룹의 ‘환부’를 도려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특히 70, 80년대식 산업합리화조치와는 달리 ‘재계 자율’의 형식을 취했고 김대중(金大中)정권이 추진해온 경제구조 개혁이 첫 가시적 결실을 보았다는 점에서 향후 개혁작업에도 상당한 추진력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글로벌경제와는 동떨어진 국내 수급(需給)분석에 바탕을 둔 이번 구조조정안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일부 업종에서 독점이 심화되고 시장진입에 실패한 업체를 퇴출시키지 않는 ‘반(反)시장주의적’ 해결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총수가 도장을 찍은 합의서가 정부지원의 미흡, 그룹내 역학관계, 무더기 감원에 따른 노조 및 협력업체 반발 등으로 ‘선언문’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모두가 득본 ‘윈―윈(win―win)’게임〓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이 ‘업종간’빅딜이 아니라 ‘업종별’조정으로 방향을 잡음에 따라 예상됐던 일. 전경련 관계자는 “한달 남짓한 짧은 시일내에 업종(異業種)간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컨소시엄 등으로 단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룬 이번 조정안은 특히 설비과잉에 따른 과당 수주경쟁 등을 차단할 수 있어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평가를 얻었다는 후문. 철도차량 항공 발전설비 등 정부발주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이들 업종은 기술열세와 수요격감으로 험난한 앞날이 예고돼 있었다.

반면 반도체 유화 등 그룹 사세(社勢)를 좌우하는 조정안 도출은 상당한 갈등을 빚었고 반도체의 경우 경영권이 끝까지 결정되지 못한 채 사실상 ‘미봉’됐다. 그러나 반도체의 경우 설계 및 설비투자에 수조원이 투입돼야 할 처지였기 때문에 이번 ‘구획정리’가 모두의 짐을 덜어준 효과가 크다. 대산단지의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의 통합은 외형은 물론 생산성 면에서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이번 빅딜은 강압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산업합리화를 이끌었던 역대 정권과 달리 ‘재계 주도’를 인정하고 ‘당근과 채찍’정책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진전으로 전문가들은 평가.

그러나 실제 실물경제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선 미지수. S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지구촌경제 시대에 국내 수급현황을 토대로 조정대상을 결정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

일부 중공업 업종에서 과당경쟁을 없애 독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시장주의’에 역행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오히려 기술자립이 시급한 업체들에 ‘안방에 안주할’ 기회를 줘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다. 재계에선 “국제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이번에 구획된 업종에 감히 신규투자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관측.

공동회사의 한계점인 ‘경영공백’ 현상도 걱정거리의 하나. 투자타이밍 제품구성 등에 있어 소속 그룹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갈등을 겪을 수 있기 때문.

손병두(孫炳斗)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컨소시엄을 통해 투자가치를 높인 뒤 외자를 들여오면 경영권 분쟁은 자연히 희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해결 쟁점〓이번 합의가 실제 판짜기로 이어지기 위해선 실사―지분정리―인력 및 설비정리 등 복잡한 후속절차가 필요하다. “아무리 빨라도 연내에 이뤄지긴 힘들 것”이란 게 재계의 한결같은 전망. 이미 대우 삼성그룹 계열사중엔 수주에 차질을 빚고 근로자들이 동요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구조조정 마무리가 시급하다. 현대와 LG의 반도체 지분조정도 분쟁대상.

재계가 정부에 요청하는 지원책의 수위도 자칫하면 특혜시비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5대그룹은 △현대그룹의 한화에너지 인수시 협조융자 △삼성과 현대의 유화단지 통합시 산업은행의 부채 출자전환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권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채권을 인수해줬던 것처럼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다.

재계는 이번 조정안에 자동차업종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기아자동차가 또다시 유찰될 경우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함으로써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한 셈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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