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 정책간담회]총론 「순산」-각론 「진통」

  • 입력 1998년 7월 27일 19시 34분


“할 얘기는 다 했습니다. 정부와 재계가 갖고 있던 입장 차이를 솔직히 털어놓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었습니다.”

26일 정부 경제팀과 5대 그룹 총수간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한결같은 후일담.

8시간의 마라톤회의가 된 이번 회동은 종래의 형식적인 정부 기업간 회합과는 내용이 크게 달랐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정부와 재계가 상설 대화 채널을 본격 가동하면서 재벌개혁을 놓고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참석자들은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청와대측과 각료들의 발언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의미가 왜곡되거나 혼선을 빚는 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동은 정부와 재계가 서로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그동안 5대 그룹의 개혁이 미진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이같은 생각을 충분히 설명할 채널을 갖지 못해 답답해 했으며 재계도 ‘그게 아닌데’ 하는 심정으로 정부와의 공식채널 개설을 원해왔다.

이날 회동에서 김우중(金宇中)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대행은 ‘제주발언’의 진의를 설명하면서 “사람 줄이는 것만큼 쉬운 것이 어디있느냐.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생각할 때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다른 재벌총수들도 동의했는데 최근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그룹의 정몽구(鄭夢九)회장도 웃음으로 김회장대행의 제의에 동의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빅딜과 관련해 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빅딜이 필요하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야한다는 원칙에 재벌과 정부가 합의를 보았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5대 그룹 총수들은 빅딜과 관련해 “빠른 시일내에 빅딜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을 갖겠다”고 정부측에 전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회동에서 재벌들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통해 부채비율 감축과 상호지급보증 해소의 중간점검을 하기로 함으로써 재벌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

이장관은 “중간점검 결과 재벌개혁이 미진할 경우 회동을 더 자주 열어 개혁속도를 가속화하도록 독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 대신 빅딜에 대한 세제혜택 등의 지원책과 국제기준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무역금융 확대 등은 재계가 얻어낸 소득.

그러나 첫 회동이었던 탓인지 원칙적인 합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구체적인 사항은 미처 합의하지 못해 향후 재벌개혁 추진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 있는 소지를 남겼다.

다음 회동은 재경부와 전경련을 오가면서 갖기로 일단 합의했다.

회동 준비와 합의사항 진척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기 위해 정부측에서는 강봉균(康奉均)청와대경제수석이, 재계에서는 손병두(孫炳斗)전경련상근부회장이 간사역을 맡기로 했다.

금후의 회동과 관련, 김전경련회장대행은 한달에 한번씩 정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 회동에서는 이재경부장관이 사회를 맡으면서 정부측에서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으며 재벌 총수들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언을 자제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영이·박현진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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