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쌍용제지 딜레마…『독점방지냐,외자유치냐』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독점을 막느냐.’

‘외국자본을 유치하느냐.’

국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경제정책 당국이 부닥친 딜레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말 프록터앤드겜블(P&G)사가 쌍용제지를 인수해 제출한 기업결합신고서를 심사한 결과 두 기업의 결합시 일부 품목은 독과점이 심화, 해당 사업부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심사보고서를 판결기구인 심의위원회에 조만간 제출할 계획이다.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하면서 독과점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업결합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례가 없어 이 사안 판결 귀추가 주목을 받고 있다.

▼독점 우려〓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지침은 회사 결합후 점유율이 1위로 50%를 넘거나 상위 3개사 합계가 75%를 넘었을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기업결합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실제 심사를 맡은 공정위 담당자는 “P&G가 쌍용제지와 기업결합(인수합병)을 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며 “그러나 일부 품목은 독과점상태가 되기 때문에 쌍용제지 해당 사업부를 매각토록 시정 조치하는 내용을 심의보고서에 담았다”고 밝혔다.

생리대 사업부문이 매각대상으로 유력하다. 세계적 생활용품업체인 P&G 한국지사는 현재 국내 생리대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쌍용제지는 생리대 시장의 4위 업체로 이를 인수하면 상위3개사(P&G 유한킴벌리 대한펄프) 시장점유율이 75%를 넘어선다.

P&G로서는 “이 품목을 매각하면 사실상 쌍용제지를 인수한 의미가 없어진다”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 딜레마〓공정위는 최근 세계은행(IBRD)으로부터 독점의 우려가 있는 기업결합을 철저히 막아달라는 정책 권고안을 받았다.

IBRD는 국내 기업간 빅딜(대규모사업 교환) 과정에서 독점구도가 형성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공정위는 1위 업체 시장점유율이 40%, 상위 3개업체는 60%일 경우 기업결합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국내기업을 인수할 여력이 국내보다는 해외쪽에 더 많다. 따라서 이 조항은 해외기업의 국내기업 인수시 적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

산업합리화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는 예외인정을 하고 있지만 외국기업 인수시에는 적용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 공정위의 고민이다.

독점 가능성과 해외자본 유치가 정면으로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주형(金柱亨)이사는 “외국기업이 국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업종은 자동차 등 사실상 일부 업체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업종”이라며 “외국업체가 이들을 인수할 때마다 독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건이 시정조치로 판결이 나면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인수에 찬물을 끼얹게 될 가능성이 높아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심사보고서는 일부 기업결합에 제한을 가하는 내용으로 올렸지만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상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기업결합이 그대로 인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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