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책임]대통령-경제관료 모두 제구실 못해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11일 담화에서 『책임을 느낀다』고 언급했지만 여론은 냉랭하다. 국가경제 관리를 끝내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남의 손에 넘겨놓은 채 「고의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엄정하게 책임소재를 가려 사태의 재발을 차단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IMF구제금융에 이르기까지 김대통령과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 김인호(金仁浩)전경제수석, 이경식(李經植)한은총재 등 정책 핵심라인들이 보인 행태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수렁에 빠진 전말〓『각하, 정말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외환대책을 시급히 내놓아야 합니다』 11월10일 이한은총재는 김대통령에게 전화로 호소했다. 한은은 3월중순부터 외환위기 가능성에 주목하고 줄곧 청와대 재정경제원에 환율변동폭확대, IMF구제금융 요청 등을 건의했다. 그런데도 지금껏 김대통령은 『내가 경제를 뭐 아는가』 『장관들에게 일임해 놓았다』는 얘기만 반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는 강전부총리와 김전수석과도 여러차례 만나 긴급대책을 얘기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마치 돌부처 같았다는 후문. 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 회장은 IMF구제금융 신청이 이뤄진 뒤 『체면만 챙기고 목에 힘주기를 좋아하는 관료들의 해묵은 속성과 아집 때문에 최악의 카드만 남았다』고 분노했다. 김회장은 11월초 미국 재계인사로부터 『미국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금융상황을 「스페셜 얼러트(특별경계)」로 보고 있으며 금융기관들이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을 대폭 줄일 움직임이 있다』고 제보받았다. 이를 전해들은 강전부총리는 자세한 확인도 없이 『쓸데없은 얘기나 하고 다닌다』며 김회장을 질책했다. 김회장은 다시 직접 일본에 도움을 요청할 것을 건의했지만 강전부총리는 『체면이 있지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일축했다. 청와대에도 뜻을 전달했지만 한마디로 무시됐다. 지난 3월 부총리에 기용된 강씨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벤처기업활성화 및 장기경제과제 등 경제체질 개선작업에 매달렸다. 그사이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대농, 7월 기아그룹 등 굵직한 재벌그룹이 줄줄이 넘어졌다. 강씨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 경제기초가 좋은 만큼 지금이야말로 시장경제로 체질을 전환하는 호기』라고 말했다. 선진경제에서 나타나는 구조조정 과정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경제기초가 무너지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는 재경원 금융정책실 인력을 금융개혁 작업에 총투입했다. 예상대로 재경원과 한은은 밥그릇싸움에 매달리며 금융위기를 방치했다. 기아사태는 결정타였다. 강씨는 삼성그룹 유착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1백일을 끌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해법은 외국인이 기피하는 「공기업화」였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지론이었던 시장주의와 정반대되는 해법이었다. 국제불신을 사지 않는게 이상했다. 11월 들어 하루에 10억원씩 달러가 빠져나가는데도 그는 위기실상을 청와대에 알리지 않았다. 한은총재가 SOS를 쳐도 「펀더멘탈(경제기초)」 타령만 늘어놓았다. 그러다 11월16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구제금융을 전격 합의해놓고 사흘 뒤 경질됐다. 김수석은 강씨 논리에 동조, 견제와 조정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강도높은 「시장주의」를 주창하면서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극단논리를 폈다는 평이다. 한은도 외환위기 대책을 진작부터 건의해 왔다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지만 외화관리 은행감독기능을 방치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재경원 금융정책실은 원내 경제정책국과 국책 연구기관이 「환율변동제한폭 폐지와 종금사영업정지」대책을 건의해도 「금융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선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취한 행동은 거의 없다. ▼이전의 책임자들〓IMF 직할체제에 이른 책임을 보다 멀리 넓히면 박재윤(朴在潤) 한이헌(韓利憲) 이석채(李錫采)전수석, 정태수(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으로 대표되는 재벌 차입경영, 금융기관의 방만한 자금운영 등이 꼽힌다. 박전수석은 현정부 출범초 「신경제 1백일계획」을 내놓고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안정화 기조가 무너졌다. 이전수석은 경상적자가 지난해 2백37억달러에 달했는데도 원화가치 절하에 극력 반대했다. 원화의 고평가는 외화차입을 더욱 불러왔고 결국 한순간에 폭발했다. 정전회장은 외환위기의 첫단추를 끼웠다는 평이다. 정경유착으로 수조원의 은행돈을 동원, 검증되지도 않은 코렉스설비에 쏟아부었다. 삼성그룹은 무리하게 자동차산업에 진출, 기아사태를 촉발했는가 하면 그룹자체의 자금난을 가져왔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안주해온 금융기관 역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 ▼지금도 진행중〓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직 현직에 있으면서 여전히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현실이다. IMF협상 과정에서 임창열(林昌烈)부총리는 체면불구하고 직접 나서면서 오히려 우리의 협상입지를 약화시켰다. 재경원 금융실은 외국기관이 한국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끝까지 우리 실상을 감추기에만 바빴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김대통령의 태도에 분개, 두번씩이나 경고전화를 했다. 임부총리는 협상내용조차 끝까지 속이면서 「국익」을 내세웠다. 〈임규진·백우진·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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